만약 종현이 제집에 들어올일이 있을줄 알았다면 민기는 기필코 집을 치우고 나갔을 거다. 서재를 엉망진창으로 어질러 놓고 거실엔 사방 팔방 옷가지들을 던져 놓고 나가지는 않았을거란 얘기.

이상하게 나가기전에 치우고 싶단 생각이 들때엔 미래의 자신이 마지막 사인을 보낸것인데 받아채지 못한 자신을 탓할수 밖에.


산책을 빙자한 종현의 옆얼굴 훔쳐보기를 하다가 민기는 평평한 산책로에서 주륵 넘어졌다. 사람이 살다보면 넘어지기도 하고 그럴수 있다. 민기는 조금 챙피했지만 벌떡 일어났다. 무릎이 깨지거나 한것도 아니여서 발목이 아주 살짝 시큰하긴 했지만 신경쓸 정도는 아니였다.


집으로 돌아가자며 차를 타러 가는사이에 주차장과 산책로 사이에 턱을 지나다가 또 발을 삐끗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1차적으로 충격 받았던 발이 다시 한번  충격을 받아 멀쩡하지 않았다. 차에 탈때까지는 그저 조금 아픈 정도 였지만 집앞에 도착하자 민기의 발목은 퉁퉁 부어 올라 혼자 걷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종현이 집까지 데려다 준다는걸 사양하고 싶었지만 사양한다고 될 상황이 아니였다. 이럴줄 알았으면 치우고 나올걸!! 민기는 속으로 천번은 후회했다.



"어..집 안치우고 나와서 엉망이에요..욕은 속으로만 해요. 챙피하니까"


문앞에 서서 차마 열지 못하고 말하자 종현은 얼마나 더럽길래 그러냐며 안놀릴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종현은 문이 열리고 민기를 부축해 들어가서는 터지는 웃음을 참을수가 없었다. 뱀이 허물을 벗듯 욕실에서 침실까지 흔적이 죽 이어져 있었고 서재로 쓰는방은 불도 끄지 않은채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그리고 책상위에 널부러져 있는 먹다남은 마카롱과 부스러기들 음료 빈병들이 굴러 다니고 있었다.


"이야..이렇게 보니까 작가님 방이라기 보다는 게임 폐인 방..같.."


"아..속으로만 하라니까요"


민기는 종현이 저를 얼마나 게으르게 생각할까싶어 부끄러워졌다.


"알았어요. 안놀릴게요. 우선 찜질 할래요? 얼음있어요?"


"아뇨"


"그럼 차가운 물은요?"


"정수기는 있어요"


"그럼 찜질팩은요?"


"........................"


"수건은 있죠?"


"욕실에.."


종현은 수건에 정수기 물을 받아 적셔서 냉동실에 잠깐 얼려두고 민기의 다리를 테이블 위로 올리게 한후 부어있는 부분을 조심히 만져 보았다.


"아프진 않아요?"


"네. 그냥 조금 욱신욱신?한 정도에요"


"오늘은 찜질했다가 내일 아침에 병원 가요. 데려다 줄게요"


"출근 하잖아요. 알아서 갈게요"


"이다리로 병원을 어떻게 가려고요"


그러다 이내 종현이 생각이 바뀐듯 얘기했다.


"아니면 그냥 우리집에서 잘래요? 아니다 내가 내려 오는게 좋겠네요 민기씨가 다리를 안써야 하니까. 새벽에 갑자기 아프면 어떻게해요"


"아..아니 괜찮.."


"집에가서 출근할 준비 해서 올테니까 쉬고 있어요. 현관 비밀번호 뭐에요?"


"어. 아니 종현씨 잠깐만요. 그 내방 침대가 그리 크지 않아서 둘이자기엔 좁아요"


"하룬데 뭐 어때요. 다녀올게요"



민기의 발에 얼린수건을 얹어준후 제할말만 하고 올라가버린 종현의 뒷모습을 보며 민기는 한숨을 쉬었다. 아니요!..제가 못잘거 같아서요!.. 못한 말은 삼키었다. 종현은 아침에 출근할 준비를 한채 씻고 왔는지 잠옷 차림으로 갈아 입을 옷을 챙겨 내려왔다. 종현이 올라가 있던 사이 민기도 씻고는 어질러져 있는 집을 대충이라도 치워냈다.


"아픈발로 왜 움직였어요. 이리 앉아요. 찜질팩 가져왔으니까"


종현은 가져온 아이스팩을 수건에 감싸 민기의 발을 얹었다.


"청소는 뭐하러 했어요"


"챙피해서요..근데 진짜 괜찮을거 같은데.."


"설마..나 있는거 불편해요?"


민기는 그건 아닌데..대답하며 빙긋 웃고는 더이상 얘기할 수 없었다. 불편한게 맞긴 한데 그 불편함은 차마 말할수 없는 불편함이고 아니라고 하자니 종현이 원하는대로 흘러가니까. 물론 종현이 원하는 대로 하는데 무엇인들 문제일까만은 최근 민기는 종현의 친근감 넘치는 행동들을 걱정 하고 있는 중이였다. 여행도 데이트도 이런 편안한 행동들도 상상했을때야 좋았지만 직접 겪어보자니 문제점이 있었다.



 


민기는 자신의 감정이 극에 달할때까지 차곡히 감정을 쌓아두었다가 버티지 못하면 그제서야 글에 전부 녹여내여 풀어냈다. 그렇게 풀어낸 감정은 사그라 들었지만 쌓아두며 생긴 생채기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못한채 안으로 곪아들었다. 그건 민기를 끊임없이 갉아먹었다.


민기는 살고자 여행을 떠났었다.


첫여행지에서 우연찮게 만난 동호는 민기와 비슷한 상황이였다. 첫사랑이였고 6년동안 사랑하던 사람의 결혼식까지 보고서 여행길에 올랐다고 했다. 둘은 동질감에 친해질수밖에 없었지만 정반대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성향 자체가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해 모든 감정이 극대화 되어 체감되는 민기는 감정 고조가 크고 잘 휩쓸리는 반면 동호는 약간은 무디다 할만큼 감정변화가 크지 않았고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바라보며 쉽게 휩쓸리지 않는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였다.


'하루하루 살다보면 살아질거고 언젠가는 슬픔도 옅어지겟지. 매일을 살아서 모으다 보면 그것도 언젠가는 먼 기억이 될테니까. 그렇게 살아볼 예정이야'


동호는 그렇게 내뱉고 정말 그렇게 지냈다. 여행을 하며 즐거운날은 즐겁게 그러다 어느날 늦은밤 맑은 하늘 가득한 별들을 보다가 슬퍼지면 슬픈대로 그리워하며. 동호는 그리워 하는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고 억지로 버텨내지도 않았다. 감정이 흐르면 흐르는대로 흘러가게 두었다. 그감정 위에 배를 띄워 자신을 위태롭게 하지 않았다.


민기는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방식으로 스스로를 다독이는 동호를 보고 위안을 얻고 희망을 얻었다. 오아시스를 찾은 여행자처럼. 함께 여행을 하며 동화 되어갔다. 시야에 비추어지는것들에 감정을 담지않고 보이는대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고 감정이 흘러 넘치면 자연스레 흘려버리는 법을 배워갔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기준이 바뀌자 민기는 전과 다르게 스스로를 위로하는 법을 배웠다. 그 과정은 민기에게 안식처 같은 감정이 싹트게 했다. 그뿌리가 보통의 사랑과는 다를수 있겟지만 존경과 애정을 담은 감정은 우정이라 말하기엔 무거웠고 사랑이라 말하기엔 욕정이 없었다. 그랬기에 민기는 스스로도 전혀 의심하지 않은채 깊은 우정이라 확고히 믿었다. 확고했던 그 믿음은 한국으로 돌아와 6개월 후 동호가 건넨 청첩장을 받으며 깨졌다. 6년을 사랑했고 다른남자와 결혼했던 그여자는 6개월만에 동호에게 돌아왔다. 그렇게 동호는 그여자를 위해 26살이란 이른나이에 결혼을 선택했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동호 앞에서 민기는 아무말도 할수가 없었다. 



배신감.


민기가 그순간 느껴선 안되는 감정이었다. 민기가 느꼈던 배신감은 자신의 신을 빼앗긴 사제와 같았다. 자신의 구원자 였던 동호에게 마리아와 베드로가 존재했음을. 그리고 자신은 마리아가 아닌 베드로였음을. 진실을 마주하자 밀려 들어와 민기를 뒤흔든 감정은 지금까지와 다른 온전히 존경과 애정을 담아내었기에 알지 못했던. 깨닫고 나서도 차마 전할수가 없는 엇나간 신앙심과도 같은 사랑이였다.


동호에게 동화 되어가며 받았던 깨달음은 그때의 민기를 구원하지 못했다.

민기는 동호가 그러했듯이 마음을 정리해보려 애쓰지 않았다. 동호가 알려주었던 것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데에 집중했다. 넘치는 감정도 흘러 가는데로 두었다. 그렇게 어떻게 해서든 살아보려 애썼다. 그러나 돌려지지 않는 일상은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알수 없을 만큼 매일을 보내는게 고통이 되게 만들었다.


처음 느껴보는 맹목적인 신앙심같은 사랑은 방향 조차 잡지 못한채 민기의 안에 그대로 남아 흘러 나가지 못하고 폭풍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폭풍은 민기가 스스로를 혐오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혐오감은 감정의 폭풍을 언제나 글로 정리해 태우던 민기에게 단한줄의 글도 써내릴수가 없게 만들었다. 그것이 마치 민기의 엇나간 신앙심을 사하는 유일한 방법인듯.




[술을 필름이 끊길때까지 마셔보세요. 무슨 미친짓을 할지 모르지만 한번쯤은 해볼만 할거에요. 전 술먹고 사고치는 바람에 그걸로 극복했네요 ㅎㅎ]



민기는 그날도 어느때처럼 늦은새벽까지 잠들지 못한채 생각의 고리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문득 물어보고싶단 생각이 떠올랐다. 누구에게..무엇을? 민기는 홀로 멀뚱히 앉아있는 거실이 유난히 춥게 느껴졌다. 팔에 돋아나는 소름을 쓰다 듬으며 노트북위에 손을 올렸다.



[슬픔을 잊는방법]



민기는 핸드폰만 챙겨 밖으로 나섰다. 불이켜진 술집에 들어가 술을 시키고 나선 기억이 가물했다. 인터넷에 아무렇게나 써진 말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따라할때 까지만 해도 아무런 기대가 없었다.


그저 무엇이 되었든 또하루를 어떻게든 보낼수 있게만 해준다면. 멀뚱히 거실에 홀로 앉아 하염없이 폭풍이 몰아치는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것만 같은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흐르게 해준다면 무엇이라도 좋을것만 같아서. 그 간절함이 통하였던 걸까. 민기가 제정신으로 돌아왔을땐 눈앞에 종현이 서있었고 종현이 사심없이 내밀어준 홍차 한잔은 너무 따스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지만 그 홍차 한잔은 민기에게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언젠가 동호가 말했듯 위로는 어느 순간 정말 아무것도 아닌 순간에 찾아와 지친마음을 달래줄거라 했다. 동호 자신에게는 길가에 피어있던 들꽃한송이가 그랬다며.


민기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구원자처럼 나타나 따스한 목소리로 말을 건네며 제자신을 구원해준 동호의 존재가 그랬듯이 사는것이 살아나가는것 같지 않던 민기에게 내밀어진 따듯한 홍차 한잔은 정말 오랫만에 창밖으로 비가 내리는걸 보게 해주었다.


종현이 쥐어준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는길. 술도 다 깨지않은 정신에도 내리는 비는 민기에게 상쾌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얼마만인지 알수 없을만큼 오랫만에 민기는 제대로 잠을 잤다. 잠에서 깨어난 민기는 드디어 동호에 대한 제 감정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엇나간 감정을 올곧이 마주한채 바라 보며 순수하게 제자신을 구원 해주었던 그에게 감사했고 빗겨나갔을지언정 사랑이었던 넘쳐도 흘러나가지 못하던 감정을 흘려 보내기 시작했다.


민기는 그렇게 제 구원자에게 배운 대로 드디어 상처받지 않으며 감정을 비워낼수 있었다. 종현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몰라도 민기에게 매일 찾아가 시간을 보낼수 있는 장소가 생겼다는건 큰 의미였다. 그 공간안에서 민기는 제상처를  조금씩 치유하고 있었다.


민기에게 또다시 사랑이 찾아왔어도 예전보다 두렵지 않았던건. 마음껏 좋아해보리라 작은 욕심을 낼수 있었던것은 어쩌면 민기의 구원자였던 동호에게 받은 은총일지도 몰랐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좀더 두려움 없이 본질에 가깝게 다가갈수 있게 되었으니까.


다만 제대로 된 사랑을 겪어보지 못했던. 어쩌면 처음으로 좋아하는 마음을 온전히 내뱉고 있는 지금 민기에게는 처음이 너무 많다는것이 작은 문제라면 문제 였다.


마음을 주고 있는 상대와의 작은 접촉에도 몸이 반응하는 당연한 본능도 민기에게는 낯설었다.낯선본능은 두려움부터 불러왔다. 가까이 붙어앉아 있으면 풍겨오는 특유의 달고 고소한 버터냄새도. 손끝이 닿으면 정전기가 일듯 전기가 타고 오르는것도. 얼굴 가까이 숨결이라도 붙을 때면 민기는 두려웠다. 그러면 안되는게 아닐까 싶어서. 


사람의 욕심은 끝이없음을 알기에 그저 같이있는것이 즐겁고 행복함을 지나 욕심이 커질까봐. 손이 닿고싶고 닿은손을 그러잡고 싶어지고 나면 빙긋이 올라가는 그 입꼬리에 입을 맞추고 싶어질까봐. 민기는 본능이 욕심이 될까 걱정이 되었다. 


민기는 제가 좋아한다고 해서 감정을 종현에게 전할생각이 없었다. 온전히 순수하게 사랑을 전할 자신도 아직은 없었고 전한 뒤 그뒷일을 아직은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저 혼자 만족 할만큼 좋아해 보기라도 하는것이 지금까지의 목표였는데 본능이 눈치 없이 끼어들었다. 민기는 그 본능이 종현을 좋아하는데 방해가 될까봐 반갑지 않았다. 혹여 그런 본능때문에 제 신체적 반응이 종현에게 눈에 띄여 마음껏 좋아해 보기전에 또다시 들킬까봐. 핑계조차 댈수 없을까봐.


민기는 종현에 대한 감정을 방해없이 마음껏 그려내 보고 싶었다. 그무엇으로 부터도 설사 제 자신에게서도 방해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민기에게 있어 종현의 서스럼 없는 행동들은 작은 고민이 되었다. 종현의 손길을 쳐낼수도 그렇다고 다받아 주며 들키지 않을 자신도 없었다. 제마음대로 되지 않는것 이였으니까.


민기의 고민을 알리가 없는 종현은 좁은 민기의 침대위에 나란히 누워 곤히 잠들어 있었다. 민기는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고 종현을 빤히 바라보았다. 오늘밤은 잠을 이루지 못할것 같았다. 민기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by.렌제이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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