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해가 쨍쨍한 여름 한가운데 자리한 일요일 오후에는 차가운 에어컨 바람과 시원한 차,그리고 달콤한 과자만큼 좋은게 없을거다. 종현은 덥다며 민기에게 집에서 영화를 보지 않겠냐고 카톡을 보냈다. 


거절할리가 없는 민기는 편안한 차림으로 종현의 집으로 올라갔다. 종현은 쇼파앞에 알록달록 예쁜 마카롱을 내놓았다. 단것을 좋아하는 민기가 눈을 반짝이며 먹어도 되냐고 묻자 친절히도 시원한 레몬 홍차까지 내왔다.


생레몬즙을 짜넣은 홍차는 마카롱으로 들척해진 입을 상큼하게 해주었다. 민기는 욕심껏 먹고나서야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종현은 영화를 보다 부시럭 거리는 민기에게 시선을 주었다. 손에는 여전히 포기 못한 마카롱 하나를 쥐고 입가에는 마카롱 부스러기를 묻힌채 영화를 멀뚱히 보는 모습이 욕심부리는 새끼고양이 같아서 종현은 피식 웃음이 새나왔다.


"왜요?"


웃음소릴 들은 민기가 물어왔다.


"민기씨 주려고 마카롱 많이 만들어 놨어요. 그렇게 쥐고 안있어도 되요"


민기는 민망했는지 웃으며 접시에 마카롱을 내려놓고는 다시 영화에 시선을 주었다. 종현은 그 모습을 계속 바라보다가 다시 풉 하고 터졌다.


"또 왜요.."


자신때문에 웃음이 터진걸 아는지 민기는 미간을 찌푸린채 다시 물어왔다. 종현은 웃음을 겨우 참으며 입가에 묻어있는 마카롱 가루를 조심히 털어 주었다.


"이제 됐어요. 봐요"


민기는 영화에 집중했고 종현은 그런 민기에게 집중했다. 처음엔 모르고 집중해서 보던 민기가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리자 종현은 아예 자세까지 민기쪽으로 틀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걸 보았다. 민기는 종현이 왜쳐다 보는지 몰라 영화를 봤다가 신경이 쓰여 종현을 봤다가 다시 영화를 봤다가 결국 포기하고 종현에게 몸을 틀었다.


"왜요?"


"아니요. 영화봐요"


"계속 그렇게 쳐다보니까 못보겠어요"


"알았어요. 방해 안할게요. 봐요"


종현은 정말로 귀찮게 안하려는듯 민기와 같이 영화에 집중했다. 그제서야 집안은 적막히 TV에서 나오는 소리로 온전히 채워졌다. 그러길 몇분 민기가 자세가 불편한지 꼼지락 거리며 자세를 다시 잡았다. 민기가 움직이자 종현의 시선이 자연히 다시 그리 쏠렸다.


종현이 또다시 빤히 바라보자 민기는 종현이 하는데로 민기도 종현을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아..잘생겼다. 자세히 보니 눈동자가 되게 반짝반짝 하네. 그래 맞아 웃을때 저입꼬리 올라가는거! 저 미소 한번 보려고 내가 매일 디저트를 먹으러 갔다고. 민기는 종현을 민망하게 만들어 줘야지 하는 심보로 보기 시작 했는데 어느새 종현의 미모 감상으로 목적이 바뀌어 버렸다. 


웃고있는 종현을 보니 자신의 의도가 티가난듯해서 사정없이 부끄러워졌다. 얼굴이 빨개진건 당연지사. 민기는 종현을 한번 흘겨보고는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때까지도 종현은 민기를 보며 작게 큭큭대고 있었다.


"그만웃어요. 민망하니까"


"쳐다보는거 싫어요?"


"민망해요. 왜쳐다보고 있는지 모르니까"


"고양이 닮았단 생각하고 있었어요"


"첨들어요..."


민기는 민망함을 잠재우려는듯 마지막 남은 마카롱에 손을 대었다. 냠소리가 날것 마냥 깨물은뒤 우물거리고 있자 그때까지도 자신에게 눈을 안때고 있는 종현에게 고개만 돌린채 말했다.


"종현씨..다른사람을 그렇게 쳐다보면 안되요. 오해받아요"


"무슨오해요?"


"시선이 뭔가...엄한 눈으로 관찰하는거 같아서.....좀..그래요 아무튼..."


"맞는데"


남은 마카롱을 입으로 가져가던 민기의 손이 뚝 하고 멈췄다. 종현은 얼어 있는 민기의 손에서 반쯤 남은 마카롱을 빼내어 자신의 입속으로 집어 넣고는 쇼파를 일어서며 말했다.


"얼굴 빨개졌다"


종현의 말대로 민기의 얼굴은 불탄듯 벌겋게 물들어 있었다.





영화가 별로 재미가 없던 종현이 테이블을 정리하고 저녁 대용으로 시킨 치킨과맥주가 도착할때까지도 민기는 굳어 있었다. 종현도 굳이 굳어있는 민기를 굳이 건드리지 않았다. 다만 즐거운듯 입가에 매단 웃음은 숨기지 않았다.


종현은 착즙기에 자몽즙을 내어 꿀과 섞어주었다. 맥주에 섞어 자몽 맥주를 만들어 냉동실에 넣어두고 치맥을 위해 식탁위에 세팅을 해두었다. 여전히 멍하니 티비화면을 쳐다보고 있는 민기에게 다가가 말했다.


"정신 차려요. 저녁먹어야죠"


종현이 해사하게 웃어주었지만 역효과인듯 민기의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민기씨 반응보니..진짜 엄한짓이라도 해야 되겟다. 빨리안오면 후회해요"


그제야 민기는  웃음기를 머금으며 식탁으로 이동하는 종현의 뒤를 빨개진 얼굴로 따라갔다. 자몽맥주가 아니였다면 민기의 멘탈은 오늘 회복 되지 못했을거다. 종현의 자몽 맥주 레시피는 단걸 좋아하는 민기의 입맛에 적당히 쌉싸름하게 끝맛은 달콤해서 계속들어갔다. 맛있어요를 연발하며 맥주를 연거푸 두잔이나 마시더니 정작 치킨은 먹는둥 마는둥이였다.


"그렇게 먹다가 취해요"


"저 술잘마셔요 괜찮아요. 이거 진짜 너무 맛있어요"


살면서 자신하면 안되는것중 하나가 주량이라고 했다. 평소에 나름 잘마신다고 자부하던 민기도 빈속에 연거푸 들어가는 술에 취기가 오르기 시작했다. 결국 맥주는 민기가 혼자 다 마시다 싶이 했다. 술이 오르니 민기는 졸음이 몰려왔다.


"종현씨. 저 이만 내려가 볼게요. 졸려서 안되겟어요"


"많이 졸려요? 나이거 버리러 내려가야 하니까 이거 정리하는동안만 잠깐 기다려 줄래요. 같이 내려가요"


"네"








민기의 눈이 번뜩 하고 뜨였다. 눈을 데굴 데굴 굴리자 낯선 방 풍경이 보였다.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리자 저를 향해 누워있는 종현이 보였다. 민기는 순간 얼었다가 조심스레 눈을 굴렸다. 콩콩 심장이 뛰고 호흡이 가빠진것만 같았다. 이게 다 무슨일인가. 상황을 파악하려 민기는 기억을 더듬었다. 어제 종현의 집에서 자몽맥주를 마시고...졸려서 집에 간다고 했다가 잠이 들어버린 모양이다. 


쇼파에서 잠든 저를 깨우기 뭐햇는지 종현이 침대로 옮겨준 모양인데 어떻게 옮긴거지!? 아니 방법이 무슨 상관이람. 지금 당장 같이 누워있는 이상황이 좋은데. 민기는 머리속에서 폭죽이라도 터지는것마냥 호흡이 제멋대로 춤을 추었다. 입꼬리가 올라가려는걸 겨우 참았다. 종현과 가까이 붙어있는게 좋았지만 더있다가는 못된생각을 할것만 같아서 민기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려 했다.


민기가 몸을 틀어 움직이자 종현의 팔이 민기의 허리를 감싸 당겨왔다. 잠결에 안은듯 고른 숨을 내쉬며 자는 종현이 깰까 민기는 숨도 제대로 못쉬며 얼어 있었다. 민기는 종현이 잠에서 깰때까지 뒷목에서 느껴지는 종현의 숨결에 허리위에 얹어진 손가락이 제가 숨쉴때마다 따라 움직이는 감각에 손끝까지 저릿저릿해질만큼 긴장을 한채로 버텨야 했다. 


가장 곤역스러운건 부끄럽게도 종현의 숨결에, 손에서 전해져 오는 체온에, 제몸이 말을 듣지 않아 생기는 신체반응을 혹시라도 종현에게 들킬까봐. 민기는 눈을 감고 양을 세었다. 수천마리가 될때까지.





"잘 잤어요?"


정말 잘잔 얼굴로 물어오는 종현에게 민기는 차마 못잤다고 할수가 없었다.


"네..어제 제가 잠들어서 당황하셧겠어요. 그냥 깨우셔도 됬는데.."


애매하게 웃으며 민기가 대답하자 종현이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헐. 민기씨 주사있구나. 기억안나요?"


"네?저요?"


"어제 내려가려고 하니 이미 잠들어 있길래 나혼자 내려갔다가 올라와서 혹시 몰라 한번 깨웠어요. 들어가서 잘래요? 그랬더니 벌떡 일어나 방에 들어와서 자던데요? 구조가 똑같으니까 한번 헤매지도 않고 침대로 골인했어요"


"제가...요???"


"여기 우리 둘 말고 누구 또 있어요?"


민기는 당황하며 어제 밤 기억을 떠올리려 애썻다. 종현이 졸려서 못내려갈거 같으면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말했던게 기억이 났다. 그리고 정말 몹쓸맞게도 자신은 본능이 시키는대로 집으로 가지 않고 종현의 방으로 골인한게 맞았다. 제침대마냥 뒹굴거리다 잠든것도 그제서야 기억이 났다.



"와.......진상..............죄송합니다......기억났어요........"



자신이 생각해도 진상도 이런 진상이 없었다. 간식먹여줘 같이 놀아줘 저녁까지 먹여놨더니 침대까지 차지해놓고 기억도 못하고 고마워 하지도 않으며 되려 왜안깨웠냐고 탓을 했으니 이런 진상이 또 어딨는가. 민기는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오를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그래도 진상부린 덕에 종현의 침대에 누워보는 영광을 가져본게 어디냐며. 속내를 숨기고 종현에게 사과했다.



"푸하하. 그렇게 사과할일까진 아니고요. 대신 다음에 술마실땐 민기씨네가서 먹어요. 그래야 편히 자죠"


민기는 차마 대답할수가 없었다. 민기는 그저 웃어넘기며 대답하지 않았다.



종현에게 마카롱을 잔뜩 받아 내려온 민기는 종현이 출근하는걸 배웅하고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주에 출발하는 여행전 해야할일을 곱씹어 보다가 생각보다 소설의 진도가 생각보다 느리다는게 떠올랐다.


여행을 가기전에 그전까지의 내용은 정리를 해놓고 여행에 맞추어 쓰고싶은 욕심에 민기는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해봐야 겟구나 마음먹었다. 


마카롱을 가득 끌어안고 레몬 탄산수를 하나 챙긴 민기는 오랫만에 안경을 꺼내 쓰고는 책상위에 앉아 데스크탑을 켰다.


보통 편한 상태로 써내려 갈때는 노트북을 사용하는 민기가 데스트탑을 켤때엔 작정 하고 작업을 하려고 마음 먹었을때다. 그리고 그럴때면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않는 편이였는데 다행히도 집에는 과자들이 조금 남아있었고 종현에게 받아온 마카롱도 있었다. 민기는 탄산수로 입을 축이고 마카롱 하나를 입에 넣고는 야무지게 씹으며 손가락을 풀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어깨가 뻐근해서 더이상 타이핑을 쳤다가는 어깨가 나갈지도 모르겟단 생각에 드디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는시간이 일정치 않은 민기의 침실은 언제나 암막 블라인드가 쳐져있어 불을 켜지 않으면 어두웠다. 그러나 서재창은 시간가는줄 모르는 민기의 습관 때문에 일부로 아무것도 달지 않았는데 분명 아침에 앉았을텐데 이미 어둑어둑한 느낌이였다.


핸드폰으로 시계를 확인하자 저녁 7시 근방이였고 꽤 많은 카톡 숫자와 부재중 통화가 찍혀 있었다.

연락왔던 내용을 확인하던 민기는 종현이 보낸 카톡과 부재중 통화 숫자를 보고 조금 놀랐다.

카톡을 확인하고는 종현에게 전화를 넣었다.


"여보세요"


[어디에요?]


"저 집이요. 전화 울리는질 몰랐어요."


[뭐했어요?]


"여행가기전에 쓰고싶은 부분이 있어서요. 근데 시간이 이렇게 지난지는 몰랐네요. 전화 여러번 와있어서 놀랐어요"


[오전에 가게 안나오길래 뭐하나 궁금해서 전화했는데 안받길래. 퇴근하면서 했더니 또 안받고. 그뒤로는 걱정되서 했죠]



민기는 종현이 걱정되었다 얘기하자 코끝이 괜히 찡해졌다. 종현이 제자신을 걱정해 준다는 사실에 기뻤고 걱정이 되어 전화를 여러번 넣어준것도 기분이 좋았다. 이런 소소한것들은 종현에게 별것 아닌 것일지라도 민기에게는 하나하나 큰 의미로 다가왔다.

민기가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전화기 너머로 작게 한숨소리가 들렸다. 민기는 그제서야 아차 싶었다.


"걱정 끼쳐서 미안해요. 오늘은 그만하고 쉬려고요. 걱정 안하셔도 되요"


[저녁은 먹었어요?]


"아뇨. 이제 먹어야죠"


[1층에서 봐요. 얼마나 걸릴거 같아요?]


"음..30분? 씻지도 않았어요"


[알았어요 30분 뒤에 1층에서 봐요]



민기는 종현과 저녁을 같이 먹을수 있단 사실에 그저 기분이 좋았다. 신이나서 씻고 나오자 종현에게 다시 카톡이 와있었다.


[차타고 나갈거에요. 입구에 차 대고 있을테니까 차로 와요]


민기는 마음이 급해졌다. 서둘러 머리를 말리다 어질러놓은 책상이 생각났다. 치우고 나가야 하나 했지만 종현이 기다릴까 그대로 밖으로 나갔다.


종현은 민기가 하루종일 아무것도 안먹었단 얘길 듣자 잔소리를 했다. 민기는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그 잔소리마저 새가 지저귀듯 달콤하게 들려서 그냥 웃고 말았다.


"근데 글쓸때는 이상하게 뭐가 잘 안먹혀요. 생각나는걸 잊기전에 빨리 적고싶은 욕심도 있고 쓰다보면 또 머리속에 떠오르는 이야기 조각들을 이어야 해서 어느새 끼니때가 지나버리더라고요. 그러면 또 그냥 그대로 안먹기도 하고. 옆에 간단한것들 가져다 놓고 먹기도 하고 그래요"



종현은 원래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하려다 하루종일 안먹었다는 민기의 말에 차를 다시 돌렸다. 이태원에 유명한 전복집으로 찾아가 종현이 주문한건 전복죽이였다.


"빈속에 갑자기 고기 들어가면 놀랠까봐요. 그냥 죽은 안먹은듯 할거고. 이집 전복죽 맛있어요. 남기지 말고 다먹어요"


해산물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익히기만 하면 딱히 가리지 않는 편이라 민기는 종현의 말대로 정말 한그릇을 싹싹 비워냈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것같았다.



"후아..배가 터질거 같아요"


"산책좀 하다 들어갈까요? 한강 가까운데"



열대야가 끝난 한강의 밤은 시원했다. 종현과 민기는 가로등을 따라 정말 말없이 산책만 했다. 민기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말없이 걸어도 심장은 콩콩 뛰었고 그떨림에서 묻어나는 설렘도 민기는 좋았다. 바람이 불어 고갤돌리면 종현의 옆얼굴이 보이는것 또한 민기의 기분을 설레게 했다. 소소한 설렘은 민기의 마음에 차곡 차곡 들어 찼다.


민기는 그저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생각 했다. 이순간이 흘러가는게 아쉬워서.







by.렌제이의 사생활


렌제이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