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기는 왠지 긴장이 되어 약간 떨리는 손길로 벨을 눌렀다. 잠시뒤 종현이 빙긋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종현의 집은 휑할 정도로 정리되어 있었다. 세간살이는 복잡하지 않고 딱 필요한것만 있는듯 했다. 최소한의 필요가구만 두고 심플하게 꾸며둔것이 복잡한걸 좋아하지않는 종현의 성격이 그대로 들어났다. 눈으로 한바퀴 훓은뒤 종현이 이끄는데로 주방앞에 놓여진 데스크가 높은 아일랜드 식탁앞에 앉았다.


"우리집이랑 구조가 좀 다른거같아요"


"들어올때 주방 크게쓰려고 공사하고 들어왔거든요. 마실거 줄까요?"


"물한잔만 주세요"


민기는 괜한 긴장감에 목이 타 물을 부탁했다. 종현은 얼음까지 띄워 물을 내준후 민기가 다 마실때 까지 기다렸다.


"민기씨..민현이한테 제주도 혼자간다고 했어요?"


"켁"


종현의 급작스런 질문에 마지막 한모금을 삼키다 민기는 사례가 들렸다.


"괜찮아요?"


"네"


몇일동안 아무말 없길래 제자신이 헛다리 짚었다며 민망해 했는데 뚱딴지 같이 종현이 저리 물어오자 민기는 민기대로 당황했다. 그런 민기의 반응을 보던 종현은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였는지 미간을 살짝 구기고 화가 났다는듯 얘기했다.


"난 민기씨 도울겸 친해지고 싶어서 가자고 한건데 혼자 간다고 해서 서운한데요"


민기는 어째선지 자기가 잘못한것 같은 분위기에 당황했다. 이유는 모르겟는데 사과해야 할것만 같았다.


"어..........아 그게......진짜 같이 가자는 얘긴지 몰랐어서.......미..미안해요.."


"아까 민현이랑 휴가 얘기하다가 얼마나 황당 했는지. 원래 내일즘 계획 짜놓은거 보여 주려고 했는데 "


"그..그래요.어..음...그..그럼 전 뭘 하면..되요?"


민기는 현재 상황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긴 했는데 뭐가 문제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이거 읽어봐요"


"이게 뭐에요?"


"여행 일정표요"


종현은 A4용지에 예쁘게 총 일정표를 올려 두고 뒤로 넘기자 세세한 일정들과 연인들이 많이 가는 코스를 빼곡히 골라 넣어 두고 본인이 마음에 드는 곳들을 따로 표시해놓은 듯 했다.

숙소도 맛집도 코스까지 정말 꼼꼼하게도 적혀있는 일정표를 보자 민기는 뭐라고 할말이 없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사람한테 같이 안가고 혼자 간단 소릴 듣게 했으니 기분이 안상했을리가.

민기가 안절부절 못하며 종현을  쳐다보았다 일정표를 쳐다보았다 반복하자 종현은 힘주었던 미간을 풀며 다정하게 말을 이었다.


"나한테 미안하죠?"


"네.. 전 그냥 지나가는 말인줄 알아서....."


"미안하면 내가 짠 일정 안바꾸고 그대로 여행 가는거에요?"


"네? 아.. 네 그래요. 대신 여행경비는 제가 낼게요. 저때문에 가주시는거니까"


"내가 민기씨랑 가고 싶어서 가는거에요. 예약하면서 결제도 다했어요. 가서 밥이나 사요"


"아뇨 그래도 두사람분 숙박비가 적지는 않을 텐데요. 그렇게 부담을 드릴순 없어요"


"난 침대 가려서 내가 원하는데서 자야 해요. 그래서 숙박은 나 편한대로 골랐으니까 신경안써도 되요. 대신 제주도에 유명하다는 디저트 집들은 코스에 다있어요. 거긴 다 같이 가줘야 해요. 나도 간김에 사심좀 채우려구요"



민기는 미안한 마음과 당혹스러움이 같이 공존 했다. 


어쨋든 같이 가겟다고 한적도 없지만 제대로 거절을 한적도 없는건 사실이니까. 전부 자기 잘못만은 아닌것 같긴하지만 종현과 여행을 갈수 있는기회가 다시 올까 싶어서 그것 또한 입밖으로 꺼낼수가 없었다.


그냥 종현이 짜놓은 일정표대로 여행을  잘즐기고 오는것 말고는 민기가 딱히 할수있는게 없었다. 그게 저도 좋고 종현도 기분 상하지 않을 최선의 방법인듯 했다. 그래서 민기는 종현이 하자는데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물론 민기는 일정표를 좀더 꼼꼼히 볼 필요가 있긴 했지만 지금 당장 민기의 관심은 종현의 집내부 사진을 찍는것에 쏠려 있었다.


"저기 근데 종현씨.."


민기는 핸드폰을 꼭 쥐고 종현을 조심히 불렀다.


"네?"


"그..글쓰는데 필요해서 그러는데 집구조랑 부엌사진좀 찍어도 되요..?"


민기가 미안한듯 눈치를 보며 얘기하자 종현은 민기를 가만 보다가 빙긋 웃어주었다.


"좋아요.구석구석 다찍어도되요. 대신.."


"대신...?"


"주말에 뭐할거에요?"


"음..별다르게 뭘 하진 않을거긴..한데.."


민기는 왜묻는지를 몰라 멀뚱하게 종현을 쳐다보며 말을 늘였다.


"그럼 나랑 데이트하고 놀아요. 사진찍는 조건이에요"


세상에나. 민기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사진을 찍어도 되는데다 주말에도 볼수 있다니. 주말에는 디저트샵이 문을 열지 않기 때문에 민기는 주말이 돌아오는게 딱히 좋지만은 않았다. 어짜피 프리랜서라 주말개념도 약했으니 그저 종현의 얼굴을 못보는 이틀정도의 개념이였다. 좋아한다고 인지하기 전에도 그 이틀이 서운했는데 인지한 후에는 말할것도 없었다.


그런데 종현 스스로 알아서 얼굴을 비쳐준다니 고맙지 아니한가. 민기는 해사하게 웃으며 그러겟노라 했다. 그러다가 궁금한게 있는듯 다시 말을 이었다.


"근데..뭐하고 놀아요?"


"음. 얘기한적이 없는것 같긴한데.. 전 고등학교때 유학을 간거라 한국에 친구가 많지 않아요. 이나이 쯤 되니 다들 술이나 마시려고 하지 놀아주질 않아요. 내가 놀아달라고 하면 애인이랑 하라고 차여요. 근데 애인은 없으니까 나랑 데이트 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거든요. 나 하고싶은거 진짜 많은데"


거기까지 말한 종현은 말을 끊었다. 원하는 답이 있는듯. 민기는 뭔가 정답을 자신이 알고 있는것 같았지만 자신이 착각하는것일까봐 입밖으로 답이 나오질 않았다. 같이 멀뚱히 쳐다보자 종현이 또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민기씨가 주말에 안바쁠때 나랑 좀 놀아줘요. 어짜피 글쓰는데 필요한 내용들도 있을테니까. 그런건 내가 같이 해주면 되잖아. 어때요? "


아무래도 오늘 민기는 인생에 가장 행운이 깃든날인가 고민해야 했다. 쾌재를 부르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 내느라 대답을 할수가 없었다. 그러나 눈앞에 종현이  계속 마주보며 대답을 듣고싶어 하는것 같아 민기는 풀어지는 입매를 겨우 다잡고 대답했다.


"어..조..좋아요..그럼 제가 하고싶은것도 같이 하자고 ..해도 되는거죠?"


"그럼요. 좋죠"


"아. 오늘..금요일 아니에요? 주말이면 내일 이네요?"


"푸하하. 프리랜서라고 너무 티내는거 아니에요. 난 나름 직장인이라 주말만 기다리는데"


"그러게요. 이럴땐 확실히 날짜가는 개념이 약한것 같아요. 그럼 내일 뭐하고 싶으세요?"


민기의 질문에 종현은 아침일찍 1층에서 만나자며 편한 운동화를 신으라는 말만 했다.






다음날 아침 민기에게 아침 8시 외출이란 7시 기상을 불러왔고 평소 10시나 되야 일어나는 민기는 잠이 부족한 상태로 비몽사몽 1층으로 나왔다. 미리나와 차에 시동까지 걸고 있던 종현은 빨리 타라며 재촉했다.


"근데 우리 어디가는거에요?"


"자연농원요"


".............?네?"


"에버랜드요. 놀이동산. 옛날이름이 자연농원이였대요. 난 그거 듣고 엄청웃었는데 안웃겨요?"


밑도끝도 없이 놀이동산이라니. 그것도 하필 에버랜드.

민기는 에버랜드에 좋지않은 기억이 있었기에 별로 가고싶지 않았다. 그러나 종현과의 데이트를 놓치고 싶지는 않았기에 그냥 참아보리라 마음먹었다. 놀이 동산에 도착하고 입구에 들어서자 과거의 기억이 자연스레 밀려들어왔다. 같이 탔던 기구들이 뭐더라..




"자 그럼 시작은 간단하게 가볼까요?! 청룡열차부터 탑시다!"


맞다. 그때 그아이도 이랬다. 청룡열차는 무조건 맨처음 타야 한다며 타고싶지 않다는 민기를 끌고 줄을 서러 갔었드랬다. 민기는 놀이기구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며 이걸 다시 타는 날이 올줄이야. 그래도 생각보단 곤역스럽지 않아 조금 놀랬다.


"혹시 무서워해요?"


종현은 자신이 끌고와놓고 타기 직전에서야 물었다. 민기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음..태어나서 두번째 타보는건데 그것도 어릴때 한번..도전해보죠 뭐"



민기는 떨리는 손으로 안전바를 꼭 잡았다. 종현은 옆에 앉아 개구진 얼굴로 웃더니 열차가 출발하자 안전바를 목숨줄처럼 잡고 있는 민기의 손을 잡아들어 하늘로 뻗었다. 소리를 지르며 신나하는 종현과 달리 민기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열차에서 내릴때까지 정신을 못차리는 민기를 종현이 부축하고 내렸다.


"괜찮아요?"


"두번째 타본다니까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그럼 이번엔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는거 탑시다!"


종현은 벤치에 널부러진 민기의 손을 잡아 끌었다. 놀이기구의 위치를 확인하고 걸어가는 폼이 정말 신이난 고등학생 같아서 민기는 뒤따라 가며 입가에 미소가 따랐다.

종현이 두번째로 골랐던건 정말 가만히 앉아 풍경만 구경하면 되는 기차였다. 가만 앉아 풍경만 보면 되니 편햇지만 성인 남자 둘이 붙어 앉기에는 좌석이 비좁았다.


가까이 붙어 앉을수 밖에 없어서 민기는 별것도 아닌데 설레는 자신을 달래느라 바빴다. 민기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현은 놀이기구 안내책자를 보며 다음에 탈걸 고르느라 바빳고.


주말이니 사람이 당연히 많았고 여름의 한가운데 였으니 날은 너무 더웠다. 그리고 30대에 더 가까운 20대후반의 체력과 열정은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았다.


"나 왜 친구들이 정색했는지 알것같아요. 17살의 기억만 가지고 올곳이 아니구나 여기"


세번째 놀이기구까지 타고나니 긴 기다림에 몸은 이미 지쳤고 애매하게 지나쳐 버린 점심시간에 종현과 민기는 식사를 가장한 휴식을 취했다.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는 카페에 앉아 둘다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앉아서 멍때리는것도 몇십분 할게 없으니 자연스레 대화가 오갔다.

민기는 궁금했던 종현의 유학생활 이야기를 물었고 종현은 조근조근 민기가 알고싶어하는걸 대답해 줬다. 그러다 민기가 말이 떨어질쯤이면 종현이 민기에게 질문을 하곤 했다. 유럽여행을 길게 했던 민기는 이야깃거리가 많았고 종현은 유럽의 디저트 얘기를 재밌게 들었다. 


"민현이한테 한달만 유럽갔다오겟다고 하면 날 죽이겟죠"


"종현씨 없으면 디저트는 누가 만들어요, 절대 반대 할걸요"


그리고 한달이나 못보는건 나도 싫어요. 민기는 속으로 읇조렸다.



"와 벌써 4시가 넘었네. 우리 한가지만 더타고 가요"


"그래요 뭐탈까요. 무서운것만 빼고요"


"안무서울거에요"


종현이 미소지으며 민기를 이끈곳은 관람차 앞이였다.


"관람차를..타자구요?"


"네"


"어......................"


민기는 당혹스러웠다. 천천히 돌아가는 관람차 안에서 둘이서 무얼한단 말인가. 게다가 다시 타고 싶지 않은 기억이 서려 있었다. 종현은 그중에서도 유일한 보라색 관람차를 골라 민기를 안으로 밀어 넣었다. 민기는 어정쩡하게 앉아 종현에게 물었다.


"이게 왜 타고 싶어요?"


"높은데서 다 내려다 볼수있잖아요. 좁았던 시야를 넓혀줘서 시원한 기분이 들어서 좋아요. 민기씬 관람차 싫어해요?"


"싫어했어요. 안좋은 기억이 있어서. 다시는 탈일이 없을줄 알았는데. 사실 좀전에 이걸 탈때 좀 당황했어요. 안좋은 기억이 서려 있는것도 딱 이녀석이였거든요. 오래도 됐는데 색깔도 안바꿨네. 정말 싫었던 기억인데 오래된 기억이여서 그런가. 그냥 그때만큼 끔찍하진 않은것 같아요"


"이거 밤에 탔으면 더 멋졌을거 같아요. 나 에버랜드 처음와보는데 위에서 보니 멋지네요"


종현은 민기의 얘기를 더 묻지 않았다. 둘은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풍경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가장 위 정점까지 올라가면 일명 키스타임이라고 불리며 잠깐 관람차가 멈추곤 했다. 민기가 과거를 따라 들어가 어느지점을 헤맬동안 종현은 관람차 창밖을 말없이 응시하는 민기를 주시했다. 


민기를 바라보는 종현의 눈빛은 무어라 정의할수 없는 미묘함을 띠었다. 그건 호감이기도 했고 그저 단순한 호기심이기도 했으며 약간의 즐거움을 담고 있기도 했다. 어느지점에서 어느 부분이 호감이고 호기심이고 즐거운것인지 명확하게 집어낼수는 없었지만 종현이 바라보고 있는 시야는 단순한것이 아닌것만은 확실했다. 


늦은 오후 땅거미로 내려앉는 해가 작은 창 안으로 가득 들어오자 민기는 눈이 부신듯 미간을 좁히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순간 종현의 입가에는 역시나 알수 없는 묘한 미소가 잡혔다. 종현은 요즘 자신이 민기를 바라볼때면 종종 애매한 미소를 짓는다는걸 알고 있었다. 


민현이 말했던 것처럼 민기에게는 고양이같은 면이 있었다. 민현은 종현이 무심하여 민기에게 한번의 친절을 베풀고 내버려 뒀다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민기는 언제나 가게에 들러 종현의 시야 안에 머물렀지만 그이상 다가가려하면 뒤로 물러나 경계하는게 느껴졌다. 미묘한 차이라 보통 모르고 지나가겠지만. 성격이 세심한 종현은 그 차이를 잘 알아 챘다. 


주인을잃고 헤매는 고양이마냥 처량맞던 첫인상을 종현은 기억하고 있었다. 상처받은듯한 눈빛으로 경계하는 민기에게 굳이 먼저 다가가 경계심을 심어주고싶진 않았다. 인연은 한쪽에서 바란다고 이루어지는게 아니니까. 종현은 그래서 가만 지켜보기만 했을뿐이였다. 다가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않은채. 


그런데 왠지 요즘의 민기는 길들여진 고양이 같아졌다. 뭘까? 뭐가 저 예민한 고양이를 늘어지게 만든걸까. 민기의 그 미묘한 차이가 묘하게 종현을 자극하기 시작했다. 


요즘의 민기는 처음 만났던  날 비맞고 있던 상처받은 고양이도. 항상 근처를 맴돌면서도 가까이 다가가려하면 경계하는 예민한 고양이도 아니였다. 마치 집고양이가 된듯. 손을 내밀면 손길을 따라왔다. 


조련되지 않은 고양이가 손길을 따르자 종현은 짜릿한 쾌감을 느꼇다. 미묘한 경계선 위에서 눈앞의 고양이를 놓고 줄타기를 시작했다. 아직 고양이가 눈치채지 못한것 같지만. 종현은 궁금해 졌다. 고양이가 변한 이유.





고양이야 고양이야. 예쁜고양이야. 네 주인은 누구니?






by.렌제이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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