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일상은 언제나 순식간이다.

너무많은일이 일어났던것 같은 봄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조금 특별한 친구라 생각했던 민기는 연인이 되어 있었다. 친구와 연인사이에 있었던 많은 이야기거리는 언제가 되더라도 우리를 연결해주는 연결고리가 되어줄 든든한 동아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저 잘생긴 미친놈인줄 알았던 곽영민은 의외로 유쾌한 교환학생이였다. 일주일에 한두번 나타나 같이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다 사라지곤했다.


동호는 작년부터 올해까지 내었던 3장의 싱글이 좋은반응을 얻어 정규앨범 작업에 들어갔다. 이번겨울 안에 첫 정규앨범 발매를 앞두고 있었다.


민현이는 동호의 세번째 싱글의 코러스를 기회삼아 본격적으로 가수데뷔 준비를 시작 하는듯 했다. 아이돌 데뷔가 한번 엎어진적이 있던지라 조심스러워 하는것 같았으나 동호의 소속사와 이야기가 잘되어 곧 정식 계약을 하기로 했다고 했다.


어쩌면 깨닿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깨닳음의 계기가 되어준 최교수님의 1학기 레포트는 좋은 점수를 받아 잘넘겼다. 다만 다들 쟤들보단 우리가 나을거라며 쉬쉬하던 민기의 '친구로부터' 와 '위대한수령님' 만이 유일한 A+를 받은게 이슈 였다.


종강 후 무얼하고 방학을 보낼지 민기와 고민하며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날 나와 민기는 모든 계획을 수정 해야만 했다. 우편 받을 일이 없던 내 우편함에 우편물이 와있고 공교 롭게도 그걸 확인 하는 사이 문자로도 통보가 왔다. 옆에 같이 있던 민기는 그걸보고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착찹 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이제 막 마음을 확인 했는데 21개월을 떨어져 있어야 하는게 쉽지는 않지 않겟는가.

민기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길가로 나갔다. 집앞 편의점으로 가서는 닥치는대로 손에 잡히는 술과 안주거리들을 모두 쓸어 담았다.

두손으로 들기도 무거운 술들을 이고 지고 집으로 돌아오더니 씻으러 들어갔다. 술마시고 뻣을 생각이구나 싶어 안주거릴 주문 하고 갈아 입을 속옷을 챙기러 민기의 집에 잠시 다녀왔다.

옷과 속옷을 챙겨 문을 열고 들어서자 가운만 걸친채 침대옆에 기대앉아 아이처럼 펑펑 울고 있는 민기가 보였다.


"왜 울고 그래"


대답도 하지 못한채 우는 민기를 안아 달랬다. 떨어지기 싫다며 아기처럼 안겨울더니 울다 지쳐 잠들어버렸다.

잠든 민기를 보며 고민했다. 무얼 먼저 해야할지. 미뤄봤자 언젠가는 가야했다. 어짜피 해야 한다면 최대한 시간을 아껴쓰고 싶었다. 어느정도 생각이 정리되었을즘 민기는 잠에서 깻다.

일어나자마자 맥주 한캔을 비우고는 또다시 그렁그렁 해져서는 안겨왔다. 가만히 안겨오는 등을 토닥여 주었다. 한참을 안겨있다가 문득 말을 꺼냈다.


"가을학기 나랑같이 휴학하고 군대 다녀와. 난 어차피 일본 국적이라 군대안가. 너랑 같이 복학해서 학교다닐거야"


"21개월이나 뭐하려고?"


"뭐가 됐든. 할거야 학교 다니는거말고.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한건 아니였지만. 계획 한게 있었으니까 준비할거야"


"뭔지 말안해줘?"


"................................."


"아무 것도 모른채 입대 하라고 하지마. 탈영 할지도 몰라"


장난스레 얘기하자 민기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는듯 머뭇 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아직도.....렌을 뮤즈로 삼고싶어...?"


"어?"


생각지도 못한 질문이 나와 대답하지 못하자 민기가 눈을 마주쳐오며 말했다.


"나 연기 다시 해볼까 해"


" ....민기야.."


"네가 처음 으로 렌 얘기를 꺼냈을때 솔직히 기분 좋았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렌이란걸 알고나서도 아무런 강요를 안하는 널 보고 오히려 네가 원하는걸 해주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 네 뮤즈, 페르소나 나였음 좋겟다..그런생각"


"민기야.."


"아직은 먼 일이라 생각해서 그냥 뜬구름 마냥 생각만 있었는데 갑자기 너없이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넌 나라를 지키러 가는거니까 나도 뭐라도 해야할것 같아"


".................."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자 민기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동반 입대 할까 했는데 나때문에 다들 나라들 못지킬까봐 난 안가려고"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한참을 유쾌하게 웃고서 나란히 앉아 맥주를 마시며 민기와 나는 그때부터 밤새 미래를 약속 하기 시작했다. 당장의 내일부터 제대 후 더 먼 미래까지. 정말 너무 소소한것부터 큰 원대한 꿈까지.

당장 실현할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먼미래도 두눈을 마주하며 속삭이는 순간  꼭 이루어 지리라 믿음이 생겼다.


다음날 부은 눈을 떠가며 우리는 밤새 이야기했던 미래의 계획을 위해 집을 나섰다.


휴학계를 제출하고 입영날짜를 조정하고 집과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소소하고 자잘한 일들을 처리하고나서는 짐을 싸기 시작했다.

여권을 갱신하고 긴여행을 위해 짐정리를 하며 자취방 정리했다. 짐들은 모두 민기의 집으로 옮기고 본격적으로 여행준비를시작했다. 7월이 끝나가던 어느날 민기와 나는 일본으로 출국했다.

긴 여행의 시작이였다.







"와...더워"


"일본이 덥긴하지..한국 더운건뭐..한국 습한건 애교야"


"그러게 숨막힌다. 빨리 차부터 찾자. 주소 적어왔지?"


"응.가자"


여행을 떠나기전 미리 대여 했던 렌터카에 어마어마한 짐을 싣고 적혀있는 주소를 향해 출발 했다.


한시간 가까이를 달려 작은 절앞에 도착했다. 차를 주차 시키고 절안으로 들어가 뒷편의 작은 묘지로 들어섰다. 민기는 이름을 확인하더니 그앞에 서서 합장을 했다.

뒤에 서서 민기가 하는걸 가만히 바라보았다. 스님인듯한 사람이 나와 민기와 대화를 끝낼때까지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기다렸다. 민기는 차에 다시 앉고 나서야 막혔던 숨을 내뱉었다.



"괜찮아?물줄까?"


"응..생각보다 덜 무서웠어"


말은 그렇게 했지만 민기는 한참을 그대로 말이 없었다. 시동을 걸어 차를 출발시키자 민기는 시트를 젓히고 깊숙히 파고들어 눈을 감았다.



첫날의 일정은 이것말고 아무것도 잡지 않았다. 민기가 견뎌 내줄지 아닐지 몰랐기에. 왔던길을 다시 되돌아 도쿄 시내로 들어가 호텔에 주차할때까지 민기는 말이 없었다.

체크인을 하고 방에 들어서자 아무말 없이 안겨오는 민기를 가만히 안아 주었다.


미래를 약속하고 이야기 하면서 민기는 다시 연기를 해보겟다고 했다. 나의 뮤즈가 페르소나가 되어주겟다고 얘기하던 민기는 그전에 자신이 극복해야 할것을 얘기했다. 6살때의 납치는 민기에게 큰타격을 입히지 않은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그렇지만도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 일상을 되찾은줄 알았으나 10살때 다시 시도했던 연기는 민기에게 악몽을 선사했다.  촬영을 하고온날이면 민기는 초코 푸딩을 찾았고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겨우 잠들면 꿈에 그선생이 손내미는 장면이 자꾸만 떠오른다고 했다. 

찍던걸 멈추고 싶어도 이미 첫편이 방송된 뒤고 민기의 연기에 대한 반응이 너무좋아 관둘래야 관둘수가 없었다고 했다. 그 드라마 이후 민기는 더이상 연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민기는 그선생을 만나보겟다고 했다. 납치 가해자를 만나는건 위험하다는걸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트라우마에서 깨어나기 위해 스스로 부딧칠 심산이였다. 혼자는 무섭다며 같이 가달라 손을 내밀었을때 당연히 마주 잡았다.


일본사설탐정 사무소에 의뢰하여 알아보니 그선생은 출소후 얼마되지않아 사고사로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 연락이 된건 이혼햇던 그선생의 남편이였는데 민기에게 매우 죄스러워 하며 복역했고 출소후 사죄하는 마음으로 봉사를 하며 지냈다고 했다. 그러던 추운 겨울날 귀가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는데 후에 유품을 정리하러 간 그녀의 방에는 일기장이 한권 나왔다고 했다. 

민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적혀 있었고 자신이 얼마나 미안해하고 있는지와 민기가 부디 자신으로 인해 받은 상처가 치유되길 바란다고. 친절한 성품의 민기는 언젠가 자길 찾아와 그때 왜그랬냐 물을거 같으니 남은생은 속죄하며 사과할 날만 바라고 살겟단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선생의 예상대로 민기는 실제로 그선생을 직접 만나려 노력했다. 모든 얘기를 전해들었던 민기는 그녀의 묘에 참배를 가고싶다고 했고 우리의 여행 첫날 계획에 넣게되었다.

민기가 들고있던 트라우마를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절에서 만난 스님은 그녀를 찾는사람은 거의 없는데 와줘서 고맙다며 어떤관계냐고 물었다. 민기는 한참만에 제자 라고 대답 하고는 자리를 떳다.

호텔에 들어온뒤 한참이나 안겨있던 민기는 자고싶다고 했다. 초코푸딩도 먹고싶다고 했고. 민기를 재우고 초코푸딩을 사러 밖으로 나왔다.


시대가 좋아져 검색만 하면 다나오는 세상이라 초코푸딩을 구하는건 어렵지 않았다. 3개를 구매 하고 얼음을 넣지 않은 과일주스까지 포장을 부탁한후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는데 카페에 나오는 노래가 귀를 사로 잡았다.


"今出てくる歌の題目は何ですか?" (지금 나오는 노래제목을 알수있을까요?)


"Shalala Ringです" (Shalala Ring 입니다.)




짧은 일본어 실력으로 노래제목을 물어 검색했다.

귓가에 들린 가사가 마음속에 들어왔기때문이였다.




手を繋ぎ春の道を歩こう     光る夏も(ハシャいだら 昼寝しよう)幸せなsmile

손을잡고 봄의 길을걷자      빛나는 여름도 (들뜨면 낮잠자자) 행복한 smile.


こぼれ出す 秋の夕暮れ 巡る時を二人で

흘러 내리는 가을의 저녁노을 돌아오는 시간을 둘이서 





계절이 지나가도 계속해서 사랑을 이어가잔 노랫말이 마음을 흔들었다. 민기에게 하고픈 말이 들어있어 들려주고 팠다. 가까운 음반 판매점을 검색해서 CD를 구매하고 호텔로 돌아가는길에 근처에 있던 백화점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을 확인하고 서둘러 백화점 안으로 들어갔다.


호텔로 돌아올때까지도 민기는 잠들어 있었다. 잠들어 있는 민기의 손을 살펴보고는 푸딩을 꺼내어 넣어두고 잠시 통화를 하고 들어오자 언제 깼는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주스랑 푸딩사왔어. 먹을래?"


"응. 푸딩"


꺼내온 푸딩을 손에 쥐어주자 민기는 언제나처럼 수저 가득 떠 입에 넣었다. 한입 가득 먹더니 또 한입. 그렇게 반쯤 먹고는 수저를 놓았다. 너무 달아서 못먹겟다며.

주스를 반쯤 마시고선 배가 고파졌다며 씩씩하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호텔에서 나와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가 작고 허름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이집 진짜 맛있대"


"내공 있어 보이긴 한다"


작고 허름한 가게였지만 가게내부엔 만석 가까이차있었고 겨우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민기는 평소 먹는양보다 더많은 음식을 시켰다.

남기리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접시를 싹싹 비운 민기는 배가 너무 부르다며 산책을 가자고 했다.


조용하고 한적한 개천을 따라 예쁜 가게들이 들어선 곳을지나 한적한 벤치에 걸터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민기가 속으로 어떤심정인지 말하지 않아 알수는 없었지만 지금 이렇게 둘이 걷는 산책이, 같은걸 바라보며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숨막히지 않는 고요가, 손끝을 타고 올라오는 끈끈한 온기마저도 위로가 되고 있다는걸 알기에 나또한 아무말도 하지않았다.  그저 마주 그러쥔 손을 꼭잡고 놓지 않을뿐.




by.렌제이의 사생활

렌제이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