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라떼 한잔요"


종현은 따듯한 커피를 받아 카페 2층으로 올라가 구석진 자리에 자리잡았다. 민기가 수업이 끝나려면 앞으로 한시간 정도는 남았으니 기다리려면 조용한 구석진 자리가 필수였다.


자리에 앉아 핸드폰을 열자 민기로 부터 카톡이 와있었다.


[종현아 나 수업 일찍 끝나긴 했는데 팀플 때문에 30분정도 회의 해야할것 같아.]


[빨리 끝내고 갈게]


시간을 체크 한뒤 음악어플을 실행시켜 이어폰을 귀에 꼽고 눈을 감았다. 민기가 오기 전까지 잠깐 눈을 붙일 생각이였다. 요즘 들어 과제를 몰아서 하느라 피곤해 있던 터이다.

잠깐이였다 생각했는데 슬쩍 눈을 떳을때 민기는 어느새 자신의 앞에 앉아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정신에 멍하니 생각했다. 입가에 닿았던 부드러운 촉감은 뭐였을까. 설잠을 자는 사이 무언가 부드러운게 입술위에 내려앉았다가 이내 사라지는걸 느꼇다. 눈을 뜨려고 했지만 잠은 쉽사리 물러나지 않았다. 겨우 눈을 떳을땐 눈앞에 바빠보이는 민기가 보였다.


동글동글한 검은 머리통이 노트를 바라보며 쉴새없이 무언가를 필기하고 있었다.

잠이 덜깨 눈을 느리게 껌벅였다. 아직 자신이 잠에서 깬걸 모르는듯 조용히 필기하고 있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자 시선을 느꼈는지 민기가 고개를들었다.


"잘잤어?"


"왔으면 깨우지"


"피곤한거 같아서 과제 정리 하고 있었어. 밥먹으러 갈까?"


"조금만 있다가. 나 아직 잠이 안깻어"


"응"


종현은 다시 고개를 떨구고 책을 훓는 모습을 지긋이 바라 보았다. 볼펜 뚜껑을 물고 까닥거리는 빨간입술. 볼펜끝을 잡고있는 가늘고 긴 손가락. 살이라곤 도통 찌지않는 가느다란 손목. 하얀 셔츠 사이로 살짝 보이는 쇄골뼈까지 눈으로 샅샅이 훓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 



민기의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민기는 입에 물고 질겅거리던 펜을 두고 전화가 울리는 핸드폰을 들었다. 화면을 바라보더니 다정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



"응. 민현아"


"아니. 나 지금 밥먹으려고 나왔어. 어. 아 종현이랑.. 아 그래? 그럼 이따 저녁에 볼까? 집근처에서 보자. 응. 그래 알겠어. 너나 늦지마. 그러게 오랫만에 보네. 사랑이 식은건 너지. 매일 전화 한다더니? 푸하. 알았어. 그래.응 응 이따 봐"


"황민현?"


"응. 오늘 집에 왔다고 보자고 해서"


"누가 보면 몇달 못본 애인이라도 보러 가는줄 알겠다"


"아..그래 보였어? 하하.나 배고프다. 밥먹으러 가자"


민기는 정말 배가 고팠던건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현은 턱을 괸채 물끄러미 그모습을 바라 보았다.









[뭐해?]


[이제 일어 났어]


[어제 황민현 만난다더니. 늦게 들어갔어?]


[오랫만에 민현이랑 다른친구들 만나서 술마셨어. 으아 숙취 장난 아냐]


[영화나 같이 보자고 할려고 했는데. 힘들겟네]


[아냐. 가자]


종현은 웃으며 나갈 채비를 했다. 영화를 예매하고 영화관 근처에 해장 할만한 맛집 검색을 했다. 언제나 처럼 정류장에서 만나 영화관으로 향했다.


"근데 무슨영화야?"


"엘르"


"엘르? 장르가 뭔데?"


"스릴러"


".....공포는 아니지?"


"응"



영화는 생각보다 더 무서웠다. 소리를 지를만큼 공포스러운 장면이 나오는건 아니였지만 민기는 영화가 시작하고 부터 계속 움찔거리며 화면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종현은 곁눈질로 그런모습을 계속 바라보다 괜찮냐고 물었다.



"으..좀 무서워 난 스릴러도 좀 무섭더라 하하하"


조용히 대답하는 와중에도 움찔거리는게 보였다. 종현은 잠시 민기를 바라보다 둘사이의 좌석 팔걸이를 위로 올렸다. 깜짝깜짝 놀래느라 어쩔줄 몰라하는 민기의 손을 끌어다 깍지를 끼어 포개어 잡고는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민기가 놀랜듯 시선을 주는게 느껴졌다.



"무섭다며"


 

 잡힌 손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풀어지지 않았다.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모두 빠져 나가고 나서야 종현은 민기의 손을 풀어 주고 일어섰다. 밖으로 나서자 꽤 많은 양의 소나기가 쏟아 지고 있었다.




"비온다는 얘기가  있었나?"


"소나기 올지도 모른다고 했었는데. 우산 안가져 왔어?"


민기가 우산을 꺼내며 물었다. 백팩안에는 항상 챙겨다니는 작은 우산이 있었지만 종현은 모른척 없다고 대답했다.


"그럼 같이 쓰자"


민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작은 우산 속으로 종현이 들어왔다. 쏟아지는 빗발에 종현은 민기의 어깨를 끌어 안고 가까이 붙어 걸었다. 민기는 신호등 앞까지 어떻게 걸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떨리는 심장소리가 혹여 들리기라도 할까봐 빨리 신호가 바뀌기만을 바랬다. 그런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종현이 민기 귓가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향수 바꿧어? 이냄새가 아니였던거 같은데"


제 귓가에 종현의 입술이 닿은것 같은 착각에 민기는 귀까지 새빨개 졌다. 종현은 새로 바뀐 민기의 향수냄새가 좋은건지 입가에 미소까지 매달고 민기의 허리를 끌어 당겨 좀더 가까이 다가와 코를 박았다.

잡은 우산은 조금더 깊숙히 기울어진채 신호등이 바뀌어도 건널줄을 몰랐다. 우산을 그러잡은 민기의 손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4달전.



띠롱 띠롱.

친구들과 인사를 주고 받느라 학교 현관 앞에서 멀어지지를 못하고 있었다. 핸드폰 알림이 울리기에 꺼내어 확인했더니 계좌이체가 들어와 있었다. 그제서야 2천원이 생각났다.


졸업식이긴 했어도 학교 교장이 워낙에 성미가 급하고 특이한 사람이라 평소랑 같은 시간에 나왔다. 언제나 만나던 아이는 오늘도 먼저 정류장에 와있었다. 하나 다른점이라면 오늘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 저기...... -


- ? -


- 미안한데 내가 지갑을 놓고서 그러는데 2천원만 빌려 줄래. 계좌번호 불러줘. 졸업식 끝나고 바로 입금해줄게. 지금은 핸드폰밖에 없어서 -


민망했는지 눈도 못쳐다 보며 고개를 떨구며 말을 걸어왔다. 아주 오래되었지만 입학식날 나역시 지갑을 놓고와 이아이에게 돈을 빌린적이 있었다. 시간을 끌면 더 민망할까봐 지갑에서 2천원을 꺼내 건네 주었다. 핸드폰을 내밀어 계좌를 적어 달라는 아이에게 되었다 할까 하다가 적어 주었다.



진짜 바로 갚네. 안그래도 되는데.

알림을 터치해 확인하고 닫으려는데 보낸메모가 시선을 잡아 끌었다.





good-bye bye.

김종현.




내이름..아네. 굿바이...?


딱히 서로에게 아는척을 한건 아니였지만 3년 내내 거의 매일을 아침마다 보았다. 어떤 접점이 있던것도 아니였고 친구의 친구로 건너 아는 사이가 될수도 있었을텐데 이상하게 연이 닿지 않는 아이였다.


왜인지 모르게 건네는 마지막 인사가 떨떠름했다. 얜 우리가 같은 대학에 붙었다는걸 모르는구나. 하긴 알아도 난 이공계열이니까 만나기 힘들지도. 그래도 캠퍼스를 왔다갔다 하면 한두번씩은 마주치지 않을까? 


그때서야 아차 싶었다. 같은 캠퍼스를 다녀도 길가에서 마주쳐도 이아이와 자신의 접점이 없다는걸.

그저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고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아서 아침마다 잠깐씩 매일 마주쳤다는것 말고는 길가며 인사하는 사이도 아니였다는게 문득 떠올랐다.


핸드폰을 가만 바라보며 고민했다. 내가 여기서 이걸 보는걸 끝으로 집으로 돌아간다면 오늘은 나에게 그저 졸업식일뿐 이아이와 어떤 인연이 생기진 않을거다. 앞으로도 우연하게라도 만나도 스쳐지나가겟지.



"어 황민현 여기!"


퍼뜩 친구의 부름을 들어 고개를 돌리자 그아이의 친구이자 내친구의 친구였던 아이가 내려오고 있었다.


"집에 가는길이야? 오늘은 왜 혼자야? 맨날 공주님이랑 같이 다니더니"


"우리 공주님 지금 감성폭발 상탠가봐. 짐정리 하다 말고 하염없이 창밖만 내다 보는중이셔. 원래 감수성이 풍부하긴 한데 나몰래 숨겨둔 첫사랑이라도 있었나봐. 오늘따라 정신을 못차리고 불러도 대답도 몇템포 늦고. 계속 어딜 멍하니 쳐다보고. 시간이 필요한거 같아서 옆반갔다가 내려왔어. 그건 그거고 집으로 바로 갈거야? 겜한판 뜨고 가자 "


"좋아 콜! 종현이 너도 갈거지?"


종현은 교실방향을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냐 먼저가 나도 교실 얘기하니 두고온거 생각났어. 생각나면 전화할게 "


"그래 알았어! 나중에 봐"




친구들에게 먼저 가라고 인사하고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정작 들어서고 나서야 깨닳았다. 난 그아이가 몇반인지도 몰랐다. 하는수 없이 한반 한반 스쳐 지나가며 교실안을 살폈다. 문과 가장 끝반까지 가서야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밖을 내려다 보고 있는 그아이를 발견 할수 있었다. 이름이.. 최민기 였던가?


남잔데도 예쁜 외모때문에 여자애들 마저도 공주님이라고 부르는. 3년 내내 조용히 지냈지만 항상 사람들의 입에는 오르내리던 아이였다. 성격이 워낙에 조용한지 언제나 크게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가끔가다 마주칠때면 항상 주변에 사람들로 둘러쌓여있었다.


뭘보는걸까. 자신이 큰소리를 내며 다가온건 아니였지만 창밖에 집중하느라 다른건 신경쓰이지 않는듯 했다. 최민기가 창밖을 쳐다 보는것 처럼 나역시 최민기를 가만 내다 보고 있었다.


얼굴에 안타까움 혹은 그리움 같은걸 매달고 시선은 교문 방향을 향해 있었다. 누굴 찾는걸까. 혹시 그게 난 아닐까? 문득 좀전에 핸드폰에 찍혔던 메모를 떠올렸다. 왜 신경이 쓰이는지 모르겟다. 창밖을 바라보는 민기의 눈빛이 어쩐지 가끔 저와 마주칠때 보였던것만 같아서 쉽사리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기를 얼마나 했을까. 드디어 최민기의 몸이 움직였다. 나를 발견하고 놀라는 얼굴이였다.

뭐라도 말해야 하는데. 뭐라고 해야 하지. 딱히 할말이 있는건 아니였는데. 무슨말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뇌와는 다르게 입은 뇌를 거치지 않고 자기가 하고픈말을 내뱉어 버렸다.



"안녕. 혹시 집에 갈 차비는 안필요해?"





-fin-





by. 렌제이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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