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로부터 갑작스레 자취 허락이 떨어진건 아빠의 미국 지사 발령 때문이였다. 게다가 5년. 그때쯤이면 아빠의 퇴직즘에 가까워 지기때문에 엄마는 이모들이 있는 미국에서 더 머물 생각을 했고 그러자 나에게는 자취라는 자유가 주어지게 된거였다.


21살이나 먹어서 부모님과 떨어져 산다고 울고 불고 하지도 않을뿐더러 자취에 대한 로망 마저 있던 나는 갑작스레 시작하게 된 자취도 충분히 즐거웠다. 자그마한 불만이 있다면 이미 학기가 시작된 뒤 구하게 된거라 어쩔수 없이 고를수 있는 범위가 넓지 않아서 결과적으로 이웃사촌이 최민기라는 점 정도?


자취방을 구하러 나서는 날 가정부로 꼬시려 했지만 실패한 민기는 이내 자신이 자취하고 있는 건물로 들어오라고 꼬셧다. 당연히 거절햇지만 한번 집착하기 시작하면 끝을 보이는 최민기는 결국 내가 결국은 뉴이스트빌리지에 방을 보러 가게 만들었다. 남아 있는 방은 3개. 그중에 민기의 옆집인 703호가 비어있다는걸 알게되자 민기는 그방으로 하라며 종용하기 시작했다. 가까이에 살면 얼마나 귀찮을지 빤히 보였기에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 했건만 결국은 최민기의 뜻대로 난 703호로 입주하게 되었다.



부모님 짐을 모두 시골 할머니 댁으로 보내고 살던집은 세를 주고 부모님이 미국으로 떠나는것까지 보고 나서야 나의 이사는 시작되었다. 빌트인이 거의 되어 있어서 책과 옷,기타 잡다한 세간살이들로만 하는 간단한 이사였기에 혼자도 충분하리라 믿었다. 황민현과 최민기가 도움이 안될건 당연한 거였으니까. 방해만 하지 않으면 되었다. 그러나 그둘이 합쳐져선 생각보다 더 강한 적이 될줄이야

박스 제일 밑에 넣어두었다 생각했던 게임기를 대체 어떻게 제일 먼저 찾아 내었을까. 정리하지도 않을 짐은 모조리 풀어 내어 사방에 늘어 놓는것인가. 물건들은 제자리를 잃고 이곳저곳에서 헤매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정리를 하는데 왜 집은 점점 더러워 지고 있을까. 왜 이사정리는 끝이 나지 않는가.

저녁만 먹이고 보내버리려던 나의 계획은 실패한채 막차 시간까지 버티다 버티다 자고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황민현의 등에 스매싱을 날린 후에야 쫒아 낼수 있었다. 더한 강적이 아직 남아 있었지만 그강적 께서는 노느라 지치셧는지 황민현을 쫒아 내고 와보니 내침대위에서 주무시고 계시더라. 



한순간 조용해진 집을 둘러보다 베게를 끌어 안고 잠든 민기를 쳐다 보았다. 아마도 이 적막감이 싫어서 동거를 요구했는지도 모르겟다는 생각이 들었다. 쟬 어쩌나 고민해봤자 답이 나오진 않을거 같아서 그냥 둔체 드디어 제대로 된 이삿짐 정리를 시작했다. 사람이 살만한 집으로 보일땐 이미 새벽3시에 가까운 시간이 였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맥주를 한캔 꺼내들자 너무 피곤햇는지 오히려 잠이 오질 않았다. 뭘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책상위에 올려둔 [드라큘라] 씨디가 눈에 띄였다.


과제를 하긴 해야하니 보긴 봐야할텐데 정 재미없으면 꺼야겟다 싶어서 조용히 디브이디 플레이어를 켯다. 쇼파에 앉아 재생버튼을 누르려니 잠에서 깻는지 민기가 물었다.


"그거 뭐야?"


"드라큘라. 안졸려서 보고 자게"


"나도 볼래"


"그러던가 맥주 마실거면 가져와"


"안마셔. 아니다. 한모금만 줘"



목말랐는지 맥주캔을 뺏어들고는 긴 한모금을 마시고는 내옆에 앉아 자세를 잡았다. 플레이 버튼을 누르고 나는 곧 후회를 햇다. 최민기는 공포영화를 매우 무서워 했다.



"으악! 악!악!악! 어뜨케 어뜨케!! 안돼! 도망가! 이 멍청한 여자야! 거기서 멈추면 어떻게 하냐!!으악!왔다!!!"



"..............................."



"아악! 안대!!으앆!!"



여주인공보다 더 시끄럽게 소릴 질러대며 내 팔한쪽을 자기 안대로 쓰고 있는 민기를 가만 바라 보았다.

얜 대체 무서워서 제대로 보지도 않을거면서 왜..공포영화는 보겟대..?그동안 같이 본 영화가 몇편인데 난 왜 이사실을 몰랐지? 지금 새벽4시가 다되가는데 이집 방음은 잘 되는 걸까. 영화감상은 글렀으니 최민기 감상이라도 해야하나. 반응보니 영화보다 더 재밌긴 하네.

47분이라는 애매한 러닝타임과 고전영화답게 딱히 무섭지도 기억에 박힐만큼 끔찍하지도 않았지만 그건 비단 나만의 생각이였나 보다. 민기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내 오른쪽  팔을 전용 안대로 이용하더니 끝나고 나서는 이내 손수건으로 쓰기 시작했다.


"어허헝 무서워. 완전 무서워 깜짝 놀랐어. 아니 저 드라큘라는 대체 왜 막 목을 막 뜯어먹고 피 질질 막!

입에 피 다묻히고 막피가 입가에 막 줄줄! 어허헝 어뜨케 어뜨케 오늘 잠은 다잤어!!"


"무서웠으면 보질말지"


"뭐래? 허어엉 공포영화는 어허헝 무서워야 보는맛이 있는거 몰라?너 그래가꼬 감독 해먹겟냐?으허어어 닭살돋았어!"


울어대면서 대답은 참..잘도 한다.

하는걸 보아하니 오늘은 제집으로 절대 안가 겟구나 싶어서 맘대로 하게 두자 마음먹었다. 그것과는 별개로 나는 졸리기 시작했으니 양치를 해야겟단 맘으로 움직였다. 아니 움직이려 했지만 팔에 매달린것이 너무 무거웠다.




"양치하러 갈거야 놔"


"안돼 무서워 데려가"



아...........진상고객님  시작이다.

결국 그날밤 나는 내팔을 최민기에게 바치고 아주 아주 불편한 자세로 잠들어야만 했다.

잠드는 그순간까지 무섭다면서 칭얼대던 민기는 아침에 눈을 떳을때까지 여전히 내팔에 매달려 있었다.










남동향이라 해가 잘들어 방이 환하다며 좋은 집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하던 부동산 아주머니의 말이 이해가 됬다. 방안으로는 해가 가득 들어왔다. 눈이 부셔 깻는데 시간은 이제 막9시를 지나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커텐을 달아야 겠다. 주말이라 늦잠을 자도 되는데 싶어서 조금더 잘까 하다가 문득 여전히 내팔을 뜯어가겟단 의지로 붙들고 있는 민기가 눈에 들어왔다. 꿈에서도 무서운 꿈을 꾸는지 잔뜩 찌푸리고 자고 있었다.

팔한쪽을 전세준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려니 문득 오티때 아침이 생각났다. 생각해 보니 그날도 그난리통에 방하나 통채로 차지하고도 매우 불편한 자세로 잠을 잤어야만 했다.







민기가 짜장면을 먹고 체했던 그 다음날.

전날의 여파로 아파서 학교를 못가겟다는 최민기를 억지로 끌고갈수도 없어서 혼자 강의를 들으러 갔었더랫다. 전공시간이여서 만났던 최교수님은 사정을 듣더니 또다시 호탕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민기를 오티에 데려가 주지 않겟냐고 부탁을 받았다. 사정이 있어서 수학여행조차 가본적이 없단다. 그런데 이번엔 가봐도 괜찮을거 같다고 부탁을 받았다. 데리고 오라고 성화였던 선배들도 있으니 데려가면 환영을 받으리라 생각했었다.


집으로 돌아가 다음날 오티 떠날 준비를 하고는 곧바로 민기의 자취방으로 갔다. 벨을 누르고 노크를 해도 소식이 없길래 이번엔 전화를 걸었다. 전화도 받지 않자 나는 조용히 카톡을 남겼다. 10초내 아무소식없으면 문따고 들어간다. 10 9 8 7..... 까지 세고나자 찰칵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얼굴에 귀찮음을 가득 달고는 문을 열자마자 퉁명스레 왜왔냐고 질문하는 민기를 제치고 안으로 들어갔다.




" 아! 뭐야 너! 들어오라고 안했거든!"


"야... 인간적으로 좀 치우고 살아라 생긴건 이쁘게 생겨가지고 방 꼬라지.."


"그거랑 그거랑 뭔 상관이야!!!!!!!"



뿔난 얼굴로 소릴 꽥 지른 민기는 이내 내짐에 의문을 가졌다.



"이건 다 뭐야?"


"아 내일 오티가니까 갈아입을 옷같은거 "


"근데 왜 그걸 우리집으로 들고와?"


"너도 데려 갈거 니까?"


"안간다고 했잖아."


"가자. 재밌을거야. 지금 아니면 다시는 안돌아오는 신입생 오티라고. 처음이자 마지막일텐데 뭐하는건지는 한번 경험해 보자고"



내 대답에 민기는 한참이나 나를 말없이 쳐다 보았다. 이유를 모르는 나는 마주 바라보다가 빙긋이 웃었다. 내가 웃는것도 가만 쳐다보던 민기는 한숨을 크게 쉬더니 몇가지 조건을 달았다.



"삼촌이 시켰지? 하..좋아 . 내가 요구하는대로 해줄수 있으면 가"


"말해봐"


"내옆에서 떨어지지 마. 누가 불러도 따라가면 안돼. 다른사람 보내. 술 안마실거야. 근데 너도 안돼. 잠은 따로 잘거야 다른사람들 사이에 껴서 못자 나. 방따로 잡아줘. 안그럼 안가. 나혼자 자는것도 안돼 너도 나랑 같은방 써. 그리고 혹시 무슨일이 생기거든 나부터 챙겨 무조건 나부터. 이게 내 조건이야. 할수 있겠어? 안귀찮겠어?"



요구조건이 뭔가 공주님을 지키는 기사같은 느낌이였지만 이유가 있겠거니 싶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난 다음날 왜 그동안 민기가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는지. 왜 저런 이상한 요구를 했는지 알게 되었다.






흔히들 오티라 함은 술이 떡이 되도록 먹고 그날의 기억이 잔존하지 않는게 정상이라 하는 사람도 있을거다. 민기가 간다고 해서인지 최교수님이 신입생 오티에 콘도를 협찬했다. 물론 민기가 혼자 쓸 방까지.

방값이 줄었으니 안주와 술은 호화로워 졌고 종류가 많아 졌으며 양도 많아 지는게 당연지사.


한낮동안 선후배간의 탐색전이 끝나가고 슬슬 저녁 술타임이 다가 왔다. 과대라는 이유로 여기저기서 불렀지만 민기에게 약속한게 있기에 그날의 노예는 내가 아닌 황민현이였다. 사정을 듣고 요정님을 지키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해주겟다며 나서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였다. 문제는 저녁부터였다. 백금발을 휘날리는 황민현은 겉모습은 세상 다시없을 노는 아이 였지만 실제로는 담배도 술도 모두 싫어하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다. 술은 안마시는게 아니라 몸에서 받지않아 못마시는 상황이였기에 돌아다니며 선배들 비유를 맞출수가 없었다.


어쩔수 없이 불만에 가득해 보이는 민기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황민현을 민기옆에 앉혀 두고 이리 저리 선배들 시중과 동기들의 술잔을 받으러 움직였다. 다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술은 마시지 않았던게 지금 생각해도 정말 잘한일인거 같다.


내가 계속해서 술을 거부하자 선배들이 곧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핑계를 대며 이리 저리 빠져 나가는 사이 한쪽 구석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이때다 싶어 그쪽으로 이동했는데 소음의 발원지는 민기와 황민현 그리고 나에게 민기를 꼭 참석 시키라고 당부하던 여자선배였다.


술파티가 시작된지 1시간즘 지났으니 이미 마신 술은 꽤많았을거다. 얼핏 듣기에도 꼬이는 발음으로

그선배는 민기에게 뭔가 말하고 있었고 민기는 매우 짜증이 난 표정이였으며 민현이는 가운데에서 어찌할바를 모르며 양쪽 눈치를 보다가 나를 발견하고 빨리 오라 손짓했다.


가까이 다가가 들어 보자니 입학때부터 유명했던 최민기와 김해진이 아니꼬왔던 그 선배는 김해진이 참석하지 않자 그 아니꼬움을 민기에게 풀어 제끼고 있었다.

후에 황민현에게 전해 듣기로는 처음에는 웃으며 대답하던 민기도 점점 도를 지나쳐 가는 말에 얼굴이 점점 굳어졌고 선배는 신입생 주제에 선배앞에서 얼굴을 찌푸린다는 이유로 말도안되는 술꼬장을 부리던 중이였다고 했다.


당장 떼놔야 겠다고 생각한 나는 민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왁자지껄 시끄러운 와중에 밤공기는 시원했고 밖에서도 군데군데 모여 술을 마시고 있는 팀들이 있었다.



모두들 각자 옹기종기 모여서 술파티가 한참이였고 나도 더이상 여기저기 불려 다니지 않아도 될거같았다.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워 민기에게 맥주한잔 하고 자겟냐고 물었다. 주변을 살피던 민기도 뭔가 고민하더니 마시겟다고 했다. 안주랑 챙겨 올테니 잠깐 기다려 하고 자리를 비운지 10분이나 됐을까.



냉장고에서 맥주 네캔과 과자한봉지 견과류를 주섬 주섬 챙기던 나는 밖에서 무언가 부셔지는 소리가 들리고 비명소리가 들리자 설마 싶은 마음으로 달려나갔다.




밖은 난장판 그자체 였다.







by. 렌제이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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