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는 길었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그거였다. 애지중지 아끼는 조카 최민기가 수업을 빼먹지 않게 같이 데리고 들어와 달라는 것.(강의시간표까지 내것과 똑같이 조정해 줄줄이야..권력이란 좋은 것이다.)친구 사귀는걸 어려워 하는 성격이니 같이 어울려 주라는 것.

결국 친구가 되어 주란 소리. 그러면서 최교수님이 내손에 쥐어 준 것은 최민기가 자취하고 있는 오피스텔 주소와 비밀번호 였다. 이때까지만해도 왜 이걸 주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주니까 우선 받긴 했다. 물론 옆에서 최민기가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었다.

거의 발광 수준으로 흥분하여 소리 지르는 최민기를 보며 최교수님은 익숙하다는 듯 하하하 웃어댔고 시끄러웠던 나는 조용히 그아이의 팔을 잡아 당겨 앉히고는 나가서 얘기하자며 등을 다독여 주었다. 물론 최민기는 또다시 나를 미친놈 보듯 쳐다보며 내팔을 치워냈다.





“삼촌 말 들을 필요 없어. 못들은걸로 해!종이도 당장 찟어버려!!!아는척도 하지마! 말도 걸지마!"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씩씩 거리던 최민기는 또다시 할말 만 하고 뒤돌아 나갔다.물론 이번엔 붙잡는데 실패하지 않았다.




“난 이미 뇌물을 받았고 약속한건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말야. 그냥 삼촌말 잘듣는 조카는 어때?”





“.........................”




최민기는 얼굴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짜증난 표정으로 뒤돌아 가버렸다.

그리고 난 처음으로 최민기에게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재밌는 애 라고. 씩씩 거리는게 마치 당근 뺏긴 토끼 같다. 저애 주변엔 재밌는 일이 많을거 같다고. 그때의 난 그렇게 생각했었던거 같다. 저아이와 친구가 되어도 괜찮을거 같다고.











“아 쫑!!종현아!!김종현!! 야!! 내말 듣고 있냐고!!”






민기의 성난 칭얼거림에 과거로 여행 갔던 정신이 돌아 왔다. 눈앞에 여전히 미간을 잔뜩 찌푸린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불만이 가득한 민기의 얼굴이 들어왔다. 하..내가 미쳤었지. 얼굴에 넘어 가면 안되는건데. 안넘어 갈줄 알았는데. 그 성난 토끼같은 얼굴이 어찌나 귀여웠던지. 근데 왜 지금은 안귀여울까 고작 1년전 인데. 지금은 진심으로 한 대 쥐어 박고 싶다.






“너 내말 하나도 안들었지? 어? 내가 삼촌 영화촬영 들어가면 너 데리고 가달라고 할까? 아님 뭐 삼촌 시나리오 너 먼저 보게 해달라고 해? 필요한게 뭐야 말만해!”




학교 한복판에선 제발..말을 말아줄래 그거면 될거 같구나. 말하고 싶은걸 간신히 참고 난 조용히 대답했다.




“민기야..아무리 친한 친구 사이에도 말야 들어 줄 수 있는 부탁이란게 있고 들어줄수 없는부탁이란게 있지 않을까? 니가 지금 나한테 해달라고 한건..보통 친구라 불리는 사이에선 안하는 거란다?”



내 대답을 듣던 민기는 정말 진심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다는 표정으로 내게 되물었다.





“아니 그럼 왜 그런 영화를 찍었대!?”





하........깊은 한숨이 몰려왔다.

이일의 시작은 민기의 삼촌이자 내가 존경해 마지않는 감독님이시자 우리 전공교수님이신

최설록(별명이 홈즈 맞다.)교수님께서 2학년이 된 연영과 학생들에게 1학기 메인 레포트를 내주면서 시작되었다. 중간 기말을 통틀어 이 레포트 한가지로 점수를 60% 반영 하겟다고 해서 상당히 중요한 레포트임에 분명 하지만 내용이 너무 광범위 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영화의 주제는 총 5가지. 애니메이션, 뮤지컬, 다큐멘터리, 로맨스, 호러.

이 주제를 기반으로 하는 영화 중 교수님이 몇가지의 영화들을 랜덤으로 적어 넣었고

학생들은 자신이 뽑은 주제의 해당영화를 관람한 후 그 영화를 실생활에 접목하여 현실과 영화의 경계선에 대해 작성 하라는 내용 이였다. 어려워 보였지만 재밌 겟다며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영화제목이 적힌 종이를 뽑았는데 그때부터 여기저기 괴성이 터저 나오기 시작했다.


점수 포인트가 높은 만큼 만만치 않은 영화제목들이 속출했다. 그중 가장 괴랄한 것은 북한 선전용 애니메이션 자랑스러운 수령님. 그리고 민기가 뽑은 로맨스물 친구로부터.

민기가 뽑은 영화는 스페인 독립영화 였는데 동성애 영화였다. 두 영화다 필름조차 구하기 힘든 영화였기에 교수님께서 친히 필름을 빌려 주시겟다고 한 영화였다. 하필 뽑아도...

과연 자랑스러운 수령님과 친구로부터 중 어느것이 더 괴랄한지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참고로 내가 뽑은건 호러-드라큘라[1956년작] 이였다.)




그게 바로 어제의 일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 레포트가 내 평범한 일상에 짱돌을 마구 날릴줄은 몰랐지. 어제 바로 필름을 영상화한 파일을 받아 보았다 했다. 그리고 최민기는 운수좋은 날 인줄 알았던 평화로운 내 일상에 “한번만 깔려 달라”며 여전히 대형 짱돌을 날리는 중이다. 분이 풀리지 않은건지 계속해서 학교 메인 스트릿 한가운데 서서 소릴 지르는 민기를 두고 조용히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어디가! 아 김종현 어디가냐고!!!”


“자취방 알아보러 가야 한다니까.”




그제서야 더 중요한게 생각났다는 듯이 민기가 해사한 얼굴을 하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는 내옆으로 다가왔다.




“김종현아?”


“왜”


“내가~이미 집이 있잖아~ 몸만 들어와 몸만~~방도 두 개니까 너하나~나하나~어때 딱이지?”


“싫다니까.”


“아씨..왜!!!!!!!!!!!!!”


“넌 양심이 없냐 최민기 니 자취방 상태를 아는 나한테 그런말이 나와? 내가 그집에 들어서는 그 순간 난 너의 가정부가 될게 뻔한데 미쳤냐. 너 쫒아 다니며 치울 자신 없다”


“하..김종현이..그렇게 안봤는데 눈치가 빨라..언제부터 눈치 챘냐”


“못챈게 이상한거 아냐?”


“젠장..”





조그맣게 다른방법을 찾아야겟다고 궁시렁거리는거 다들린다 최민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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