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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의 색은 빛을 잃었어 너의 두 눈이 덧칠해주지 않아서
사랑이란 건 너무 나쁜 것 같아 상처가 아물지도 않는데 내 맘을 덧나게만 해

아무 말도 없이 떠나버린 걸 어쩌겠어 변변찮아 나 같은 건
제대로 말도 못해서 이러는 걸 허공에 얘기해봤자 듣지 못하는 너





"음..동현아. 더 잔잔하게 읽듯이 다시 해보자. 목소리 더 깔고 책을 읽는다고 생각해봐. 빈 다락방 창가에 앉아서 너혼자 책을 읽다가 맘에 드는 구절이 있어. 그구절을 소리내어 읽는거지. 혼자 읽는거니까 딱히 목소리가 크지 않아도 돼. 들릴듯 말듯 웅얼거린다는 생각으로 소리를 삼켜서 읇어볼래"

- 네 -

"다시 갈게요"

다시 녹음이 시작되자 동호는 피곤한듯 눈가를 문질렀다. 이른 아침에 시작된 녹음은 밤이 늦도록 끝나지 않았다. 동호가 원하는 느낌이 나오지 않아 부르는 사람도 엔지니어들도 모두 피곤한 기색이 역력 했지만 동호는 고집스레 녹음을 진행 했다.

결국 녹음은 새벽2시가 지나서야 끝이 났다. 지친몸을 이끌고 주차장에 차를 대자 동호는 또 다시 눈가를 문질렀다. 몇일째 잠을 못잤고 이틀째 한시간도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몸은 피곤에 지칠대로 지쳤지만 눈을 감아도 잠들수가 없었다. 버티고 버티다 기절하듯 잠들면 이내 다시 깨고 마는 생활이 4주를 넘어서고 있었다.


감았던 눈을 뜨자 귓가에 지잉- 소리가 나며 윙윙 거리기 시작 했다. 계속해서 돌도 도는 이명에 동호가 손바닥으로 왼쪽 귀를 꾹 눌렀다. 잠시 잠깐 이명이 멈추는듯 하다가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차문을 여는 손이 마치 자신의 것이 아닌듯 느껴졌다. 손가락을 접었다 펴보아도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동호가 눈을 떳다는 감각이 돌아온 후에는 엘리베이터 안이였다. 경비원이 동호를 깨우고 있었다.

"괜찮으십니까? 119를 부를까요?"

조심히 물어오는 경비원의 물음에 동호는 가볍게 고개를 젓고 엘리베이터 구석에 구겨져 있던 몸을 겨우 일으켰다. 경비원의 부축을 받아 집앞에 서고 나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몇일만에 들어온 집에는 묵은 공기의 텁텁한 먼지냄새가 가득했다. 가뜩이나 두통이 이는 머리에 공기까지 무거워 숨이 가빠진 동호는 서둘러 창문부터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거실창을 훓고 들어오자 동호는 그제서야 막혀있던 숨통이 터지듯 숨이 쉬어 졌다. 어느새 날은 밝아 오고 있었고 밝혀져 있던 가로등들은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또 누군가의 하루는 시작되었고 동호는 오늘 하루를 또 버텨 내야 했다.





미안해 너밖에 모르고 살아서 잊고 사는 것만은 못 할 것 같아

못 할 것 같아 넌 왜 그랬을까 그리움만 남기고 넌 왜 떠났을까

잊으려고 매일 너를 지워내 봐도 수없는 단어들로 너를 미워해 봐도

난 또 어느새 어느새 너를 그리고 있어




동호는 스스로도 지금 위험한게 아닐까 슬슬 걱정을 해도 된다는걸 알고 있었다. 맡았던 마지막 녹음 작업을 끝내 두었고 이제 동호 에게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주어졌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동호가 무언가를 하려고 할때마다 몸에 베인 습관들은 동호를 하나씩 방해 하곤 했다.

이를테면 냉장고 문을 열자 보이는 쌓여 있는 우유 같은 것들이 그랬다. 동호는 우유를 마시지 않았다. 아침마다 우유를 마시던 민현과는 다르게 동호는 우유의 비린맛이 싫었다. 그래서 아침마다 민현이 우유를 마시고 달려들때면 싫다고 도망을 다니곤 했다. 동호는 한쪽 구석에 놓여진 맥주를 꺼내 들었다.

맥주는 최근들어 생긴 습관이였다. 잠들지 못한지 2주쯤 되던 어느날 버티다 버티다 취하면 잠들수 있을까 생전 마시지 않았던 술을 입에 대었다. 그리고 동호는 그날 2주만에 하루를 잠들수 있었다. 삼사일에 한번. 동호는 맥주를 한캔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러면 버티고 버티던 몸이 더이상은 버티지 못한채 무너져 내리듯 잠들수 있었다. 처음보다 두번째에 두번째보단 세번째에 잠들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 들었지만 동호에게 다른 방법은 떠오르질 않았다.

그리고 오늘은 한캔을 다 비웠음에도 눈을 뜨고 있었다. 동호는 코끝에 맴도는 맥주의 쓴내에 속이 왈칵 뒤집혔다. 빈속에 한번에 들이켰던 맥주가 탈이라도 난듯 결국 싱크대를 붙들고 모두 토하고 나서야 속이 가라 앉았다. 동호는 기껏 먹은 술을 모두 토해 버리자 또다시 할게 없어 졌다.

가만히 식탁 의자에 앉아 거실 쇼파를 한번. 열어둔 창가에 날리고 있는 커텐을 한번. 그리고 눈앞에 있는 맥주캔을 한번 바라보았다. 민현은 아침에 일어나거나 외출을 하고 오면 언제나  창문부터 열었다. 동호가 쇼파위에 널부러 지면 묵은 공기를 환기 시켜야 한다고 잔소리 하며 창문을 열고는 창가에 서서 한참을 흥얼 거리곤 했다.

식도끝이 싸해지는 느낌에 동호가 멍하던 시선을 다잡았다. 맥주는 토했어도 알콜은 조금 흡수된듯 취기가 돌았다. 동호가 식탁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냉장고로 다가갔다. 여기저기 널부러진 우유팩을 골라내어 싱크대에 붓기 시작했다. 우유를 탈탈 쏟아내고 팩을 버리려던 손이 멈칫했다.

'동호야 우유든 다른 음료수든 먹고나면 꼭 한번 헹궈서 버려야돼. 그래야 벌레가 안꼬여. 제발 콜라 먹고 좀 헹궈!!'

동호가 흐르는 물에 빈 우유곽을 헹구었다.

'야!! 헹궜으면 물기를 빼야지! 그냥 버리면 어떻게해! 넌 진짜 나없으면 어쩔래?'


"그러게..니가 없네.."

동호는 혼자 조용히 읇조렸다.






동호는 플레이어를 꾹 눌러 요즘 매일 듣고 있는 노래를 틀었다. 맥주를 다시 한캔 꺼내고 창가에 앉아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맥주를 입가에 가져갔다. 한모금 한모금 삼킬때마다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차갑고 따가운 기분이 꼭 지금의 제 감정 같았다. 마음은 차게 식었고 끊임없이 가시가 스치듯 심장부근이 따가웠다.

동호는 다 마신 맥주캔을 꾸깃 접어 대충 근처에 던졌다. 이미 바닥에 널부러져 있던 다른무엇과 부딧쳤는지 달그락 소릴 내다 멈추었다. 몸에 들어온 알콜은 이제서야 제 역활을 해주려는지 눈동자를 돌리기도 힘이 들었다. 동호는 몇일만에 눈꺼풀이 무겁게 가라앉는걸 느꼇다.



"동호야. 동호야 일어나"

다정하고 달큰했다.

"동호야. 내목소리 들려?"

포근하고 몽글한 냄새가 콧속으로 떠밀려 들어왔다.

"동호야. 동호야? 몸이 불덩인데. 동호야"

그리웠던 체온이 동호의 볼에 닿자 동호는 감겨져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동호야. 나 보여? 괜찮아? 너 지금 열나는거 같아. 우선 침대로 가자"

다정하게 부르는 목소리. 들큰하게 풍겨오는 체취. 제몸을 쓸어오는 체온.

동호는 흐릿하게 떳던 눈을 홉뜬채 눈앞에 절 보고 있는 민현의 볼을 만져 보았다. 손대면 바스라지듯 흩어지던 꿈이 아니라 설핏 찬기가 남아 있는 사람. 온전히 동호가 그리던 황민현. 그였다. 민현의 볼을 타고 내려가던 손은 민현의 어깨에서 멈추었고 동호는 바르르 떨리는 손끝에 힘을 주어 민현의 등을 끌어 당겼다.

동호가 손을 뻣으면 언제나 처럼 안겨오던 따스한 체온이 심장 근처에 고스란히 느껴지자 동호는 그제서야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는듯 눈을 감았다 뜨길 반복했다.

"너야?"

"응. 나야. 왜 이러고 있어"

"잠이 안와서. 마셧는데..네가 왔어"

동호는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체온이 놓치기 싫은듯 힘을 주었다.

"동호야. 너 지금 11월에 창문 열고 잠들었나봐. 체온좀 재보자.응? 나 잠깐 놔줘"

"싫어"

"동호야"

"싫어.싫어.싫어.가지마"

"안가. 방에 가서 눕자"

"안갈거야?"

"안갈거야"







내게 조금만 시간을 줘 내게 하루만 너를 기억할 수 있게

옆에 있어줘 하루만 내 곁에 있어줘 딱 오늘만

미칠 것 같지만 참고 있을게 네가 돌아올 거니까




지잉- 또다시 귀에 이명이 들리기 시작했다. 동호는 손바닥으로 왼쪽귀를 꾹 눌렀다. 동호의 손위로 따듯한 체온이 겹쳐졌다. 

"손 떼봐. 내가 해줄게"

동호가 왼쪽귀에서 손을 떼내자 따듯한 체온이 차가운 동호의 귀를 조심스레 감쌋다. 플레이어를 키면 들리던 목소리는 매일 들어도 그리웠다. 그리웠던 목소리가 동호에게 말했다. 

"아직도 피곤하면 이명 들려?"

걱정스러운듯 물어오는 물음이 동호는 미칠듯이 반가웠다. 

"오른쪽 귀도 눌러줘"

동호가 민현이 쪽으로 돌아 누으며 말하자 민현은 손에 들고 있던 책을 내려놓은채 동호와 마주 누워 두손으로 동호의 두귀에 제손을 얹고 동호의 눈을 바라보았다.

"산적 같다. 수염 깍고다니라니까"

"응"

"대답만"

"할게. 할거야. 일어나면 깍을게"

"응"

동호가 제귀에 얹어진 민현의 손을 붙들어 꼭 쥐었다.

"열나서 해열제 먹은거 기억해?"

"아니. 기억 안나"

"너 열났어. 너랑 몇년을 살았는데  너 아픈걸 오늘 처음봤네"

민현이 웃으며 말하자 동호가 그러게 대답하며 픽 웃었다.

"나 얼마나 잤어?"

동호의 질문에 민현은 시간을 가늠하다 한숨을 쉬었다.

"6시간? 잠만보 강동호가 어쩌다 이렇게 조금 자. 그러니까 계속 이명 들리지"

"니가 없으니까"

동호가 당연하다는듯 대답하자 민현은 대답없이 어색한 미소만 한번 짓고 말았다.

"동호야"

"말하지마"

"동호야. 들어야해"

"응. 알아. 듣고 싶지 않아"

"동호야"

"오늘만"

"동호야"

"나 아직 아픈거 같애 민현아. 이마 만져봐. 열도 안내린거 같아. 가슴도 계속 쿵쿵 거리면서 이상한 소리가 나. 숨도 잘 쉬어지지가 않아.응? 어서"

민현은 동호가 말하는대로 이마를 한번. 심장을 한번. 목뒤를 한번 만져보고는 대답했다.

"그러네. 우리 동호 아프네. 아직 열도 내리지 않았고 심장도 쿵쿵 뛴다.아직 많이 아프네"

"그치? 그렇지? 그러니까. 나 아프니까. 있어. 있어줘.응?"

"동호야"

"오늘만. 하루만 내옆에 있어줘. 더 말 안할게. 욕심 안부릴게.나 아파서 잘거야. 아픈사람 두고 가면 안되잖아. 그치? 그렇지 민현아? 너 안그럴거 잖아.응?"

동호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끝을 민현에게 뻗어 어깨를 끌어 안았다. 떨려오는 손끝이 안쓰러워서 민현은 차마 마주 안지도 못했다. 민현이 동호에게 안긴채 내뱉은 고른 숨소리를 들으며 동호는 눈을 꾹 감았다. 동호의 허리를 감싸오는 손길에 굳어 있던 동호의 얼굴이 그제서야 풀어졌다.

"오늘만이야"

"응.오늘만"

"미안"

"응.괜찮아. 오늘만. 옆에 있어줘. 버틸수 있으니까.참을게.그러니까 오늘만."








by.렌제이의 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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